잃어버린 600년
잃어버린 600년
  • 편집국 기자
  • 승인 2008.03.03 00:00
  • 호수 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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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완 석
한산119안전센터장

우리나라에는 ‘잃어버린 10년’, 또 ‘잃어버린 30년’이 있다. 전자의 ‘잃어버린 10년’은 한 정당이 집권을 하지 못한 기간이라고 한다. 설운도 ‘오빠’가 불렀던 ‘잃어버린 30년’은 1980년초 조총련계 재일동포들이 서울을 방문해 이산가족을 만나 상봉하는 한 많은 장면을 담아 놓은 것이라 한다.

일본에도 ‘잃어버린 10년’이 있다. 1990년때부터 2000년대까지 미국의 체질로 길들여진 경제불황 기간을 일본은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한다. 지금은 미국식의 옷을 벗어버리고 일본 방식의 새로운 옷으로 입고 시작하여 경제침체에서 벗어나려 하고 있다. 일본의 혼과 정신을 되찾기 위해 ‘잃어버린 10년’이라는 구호도 만들었다고 한다.

우리의 정신과 혼을 지켜주는 것은 우리나라의 고유함과 정체성 그리고 우리만이 가질 수 있는 국민성과 자긍심이다. 이는 곧 우리의 가슴 속에 살아있는 역사 문화이다.

‘잃어버린 10년’을 외치는 동안 우리는 백성들의 정신과 혼을 면면히 지켜왔던 600년의 역사 국보1호 숭례문을 가슴에 묻었다.  

무관심(无觀心)의 무(无)자는 ‘꿇어 앉은 고개를 뒤로 돌린다’는 의미이다.

이제 별 볼일 ‘없다의 무(无)’라는 뜻의 글자이다. 어느 순간의 무관심은 원래 ‘없을 무(無)’가 아니다. 어느 순간에 ‘고개를 뒤로 돌리는 무(无)’로 변하기 때문이다. 어째서 ‘잃어버린 10년, 30년, 600년’이 ‘관심’에서 ‘무(无)관심’으로 변했을까.

역사, 문화, 백성, 나라를 관리하는 것 역시 조직을 관리하는 사람이 하는 일이다. 이러한 사람들이 백성 위에, 약자 위에, 조직 위에 군림하려 하다 보니 진정한 관심에서 무관심(无關心)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백성을 위하는 진정한 관심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600년 역사의 숭고한 숭례문에  무관심(无關心)했던 것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개혁과 변화를 시도해 왔다. 백성을, 나라를, 잘 먹고, 잘 살아 보자고 외쳐 왔다. 개혁과 변화는 과거의 잘못됨을 성찰하여 현재와 미래를 잘살게 하고자 하는 것이다. 즉 고개를 돌린 무(无)의 개념을 반성하고 성찰하여 개혁과 변화를 시도해 관심을 갖고 백성과 나라를 살리고, 나아가 세계 속에 우리나라를 심어 놓자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이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잘못된 속 마음은 그대로 둔 채 겉모양만 바꾸려는 변신만을 시도하였다. 이제는 모든 것에 관심을 갖고 사회적 분배의 원칙과 민주적 배분을 바로 세워야 한다. 그래야 미래의 ‘잃어버린 100년’을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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