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는 대한민국에서 안 키울 거예요
우리 아이는 대한민국에서 안 키울 거예요
  • 편집국 기자
  • 승인 2008.04.21 00:00
  • 호수 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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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교육 정상화, 무엇이 문제인가? -⑤

   

▲ 권기복 칼럼위원

“여보! 우리 딸이 나중에 시집가서 아이 나면 이민 갈 거래요.”
“왜요?”
“우리나라는 자식들 공부시키는 것밖에 모르잖아요. 애들이 너무 불쌍하대요.”
“그렇다고 이민 갑니까?”

막 출근을 하려던 참이라 더 말을 하지 못하고 아파트를 나왔다. 학교까지 5분 남짓한 길을 걸으면서 생각에 잠겼다. 초등학교 교사로 10년을 지내고, 중학교 교사로 11년을 보냈다. 때로는 공부에 매달리는 아이들과 학생들이 가엾게 느껴지곤 했다. 그러나 사람답게 살고, 잘 살기 위해서는 학생 시절에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옳다고 여겨왔다.

인류의 기원을 70만 년전 까지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69만 년은 침팬지나 오랑우탕 같은 유인원과 다를 바 없었다고 한다. 오히려 유인원 중에서 가장 힘없고 나약한 존재가 인간이 아니었을까? 인간이 인간다워진 것은 불과 1만 년의 역사가 빚어낸 산물이다.

신석기 시대 이후로 인간은 자연을 가공하고, 이를 후손에게 학습시키게 되었다. 그 이전까지는 나뭇가지를 꺾어서 사용하거나 자연석을 깨어서 쓰는 정도에 불과하였다. 그러던 것을 갈고 깎아서 용도에 걸맞게 사용하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 그 후손은 학습된 내용을 가지고 또 다시 가공을 하여 오늘날 우주 시대와 정보화 시대를 열게 되었다.


교육 통해 자신의 모습 재발견

인간이 ‘사회적 동물’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간은 사회화 학습을 통해 ‘생물학적 존재’에서 ‘사회적 존재’로 거듭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교육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재발견하게 된다.

또한 지난 1만 년 간 쌓인 학습량이 도저하기에 10년, 아니 20년의 세월을 학습하여도 부족하여 평생학습이 필요한 시대이다. 그렇다고 모든 학문을 통달하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학문은 기초과정만 익혀두고, 한두 가지의 전문 분야에만 몰두하는 형편이다.

우리는 ‘배움의 길은 끝이 없다.’는 말을 자주 듣고, 쓴다. 교육의 중요성은 어느 누구도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교육 정도가 한 나라의 저력이나 선진의 척도가 될 수 있다. 우리나라를 돌이켜 보자. 반세기 전만 하여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의 한 나라였다. 그러나 부모들의 교육에 대한 열의는 여느 선진국에 뒤지지 않았다. 그렇기에 자본도, 자원도 빈약하기만 하였던 우리나라가 뜨거운 교육열 덕분에 이제는 선진국의 반열에 올라설 수 있게 되었다.

달도 차면 기울게 되고, 아무리 큰 그릇도 물이 차면 넘치게 된다. 이제는 우리나라의 그 뜨겁던 교육열이 금수강산을 태우는 산불이 되고 있다. 다양한 경험과 나름대로의 방황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재발견하고, 호연지기를 키워야 할 시기에 우리나라의 청소년들은 실내에 처박혀 오로지 깨알 같은 글씨와 씨름할 뿐이다. 그것이 한 판 승부로 끝나는 것도 아니다. 적어도 20여 년이 넘는 세월을 마냥 버티라고 한다. 이쯤 되면 잘 버티고 생존한 자라도 제정신인 것이 용할 정도이다.


꼬리표처럼 붙어다니는 학벌

우리 사회는 지나치게 학벌과 학력 중심에 매달리고 있다. 심지어 남의 돈을 사기 쳐 먹은 자는 용서해도 학벌과 학력을 속인 자는 절대적으로 용서하지 못하는 사회다. 지난해 말에 치른 대선이나 며칠 전에 치른 총선을 돌이켜 보자. 후보자의 약력에 무슨 대학을 졸업하였다는 내용은 빠뜨림이 없다.

대학을 졸업하고 30년 내지 40년을 넘은 사람들도 아무아무 대학이 꼬리표처럼 붙어 다닌다. 국민들 또한 일테면 명문대학이라고 칭하는 대학 꼬리표가 붙어야 똑똑한 사람이라고 여긴다.

심지어 우리 사회를 위해 이렇다 할 자취를 남기지도 않았는데, 일명 명문 코스를 밟은 사람을 훌륭한 사람으로 평가하고 있다. 비록 짝퉁이라고 하여도 ‘명문’이나 ‘명품’이라면 침부터 흘리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진풍경일 것이다.

그저 남보다 낫고, 잘 산다는 말을 듣기 위해 급급해 하는 천박한 습성이 만들어낸 산물이다. 한국에서는 이발사나 세탁소 사업이 부끄러운 사람이 외국에 이민가면 자랑으로 바뀐다. 한 민족을 위한 서비스는 부끄러운 일인데, 다른 민족을 위한 서비스는 왜 자랑스러운 일일까?

한국의 인텔리는 학습문제를 잘 해결하는(찍는) 능력 외에는 할 줄 아는 것이 없다. 또한 아는 사람도 없다. 그러다 보니 뒤늦게 배운 것들에게 푹 빠져들게 되고, 일부 아는 사람들에게 편파적으로 쏠리게 된다. 결국 학벌과 학력에 따라서 무리 짓게 되고, 사행성 음주문화나 레포츠 문화에 쉽게 젖어들고 있다. 그러다보니 중요한 일들이 정리된 서류를 놓고 협의와 토론을 통해서 결정되기 보다는 술잔을 부딪치며 몽롱한 가운데서 결정되고 있다.


우려스러운 학력위주 교육정책

교육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기 위해서 꼭 필요하다. 그러나 교육이 출세의 도구로 전락되고 있는 것이 문제다. 이제 우리가 우리 후손들을 공부벌레로부터 탈출시켜줘야 할 때이다.
학교교육 과정 외에 학교의 보충수업(요즘에는 방과후활동이라 부름)이나 자습을 철폐하고, 학습을 위한 학원이나 과외를 모두 함께 손 놓으면 어떨까? 정말, 강력히 제안하고 싶다.
대신, 남는 시간을 전인적 교육을 위한 문화 예술이나 스포츠 활동을 하게 하면 어떨까? 학교에서나 지역 사회에서 일정한 과정을 다양하게 제시하고, 이를 수행한 정도를 통과의례로 정하면 어떨까?

거의 모든 사람들이 20년 정도 학교를 다니고, 평생학습을 해야 하는데 남보다 더 잘 하고, 명문대에 다니는 것이 별 자랑스러울 것이 못 된다면 안 될까? 평생을 즐기면서 공부하면 안 될까? 제발, 학벌과 학력이라는 망령이 죽을 때까지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것을 과감히 없애버리면 안 될까? 중학교 다니다가 말썽피워서 중퇴한 사람이라도 철들어서 훌륭한 일을 많이 하면 인정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되면 안 될까?

공자는 ‘낮에 일을 하고, 밤에 시간 여유가 있을 때에 학문에 힘써야 한다’라고 했는데, 우리 아이들과 청소년들에게 ‘공부는 공부 시간에만 열심히 하면 된다.’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들렸으면 싶다.

이럴 때, 뉴스에서 “0교시 수업 전면 허용, 우열반 편성 허용, 학원 강사라도 야간학습 허용” 등의 학력중심 교육정책이 봇물처럼 터지고 있어 교단에 남아있는 필자로서 정말 우려스럽다. 밤낮을 성적이라는 회오리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그들을 위해 단단한 뜰채라도 장만해 둬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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