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송회’ 사건을 보며
‘오송회’ 사건을 보며
  • 편집국 기자
  • 승인 2008.12.08 14:37
  • 호수 4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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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복칼럼위원
1982년 11월, 간첩단 ‘오송회’를 검거했다는 뉴스를 듣게 되었다. 필자는 깜짝 놀랐다. 간첩단으로 불린 9명의 ‘오송회’ 회원 중에 두 분은 필자를 직접 가르쳐주신 은사님들이었다. 당시로는 2년 전만 해도 -필자가 대학 2학년 때- 교단에서 현대 문학과 고전 문학을 가르쳐 주셨던, 고 이광웅 선생님과 박정석 선생님. 필자가 평생을 두고 다섯 분의 은사님을 꼽으라면 기꺼이 이 두 분은 그 안에 계신다.

항상 웃음 가득하셨던 고 이광웅 선생님! 둔탁한 음성으로 선비 자체이셨던 박정석 선생님! 두 분의 공통점은 제자들을 혼낼 줄 모르며, 항상 웃음 가득한 미소로 다가오신 분이었음을 꼽을 수 있다. 필자가 고3 때였다. 과음을 하고 몸 안 청소를 깨끗이 한 다음 날, 책상에 어렵사리 앉아있었다. 이를 눈치 채신 박 선생님께서 빙그레 웃으며, 오늘은 양호실에 가서 쉬라고 하셨다. 당시, 가정 형편이나 학교 부적응으로 방황을 심하게 했던 필자를 내심 걱정해 주신 연유였다.

지난 26년, 은사님들께서 빨갱이라는 천형을 받고 사는 동안 필자는 잊고 살았다. 분주한 하루하루를 살다보니, 기억에서도 지워지곤 했다. 때때로 고 이광웅 선생님의 시집이 나온 것을 서점에서 반갑게 맞이하곤 하였지만, 지난 1992년에 작고하신 이후로 다시 세월 속에 묻고 살았다. 그러다가 일주일 전에 인터넷 뉴스에 ‘오송회’ 사건 관련자 전원 무죄 판결이 나왔다는 기사를 접하게 되었다. 지난 26년 전에 무너진 이후 새 하늘을 만난 느낌이었다. 다른 한 편으로 지난 26년 간 하늘 없는 세상에서 사신 그 분들께 필자도 죄인이라는 의식을 떨칠 수가 없었다.

지난 60여년, 우리 민족이 분단의 그늘 아래에서 이를 미명으로 하여 독재의 수단으로 악용되어 온 산 역사의 한 페이지를 우리들은 넘겨가고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기본적 권리마저 짓밟히며 살아왔던가. 온갖 고문을 당할 때에는 ‘차라리 죽여 달라’고 애원을 하였다고 한다. 며칠 전 텔레비전에서도 군산의 서씨(62세)가 생활고에 찌들려 12살부터 배를 탔고, 19살에 연평도 조기잡이를 갔다가 북한에 끌려가 3달 만에 돌아왔는데, 남한에서는 그를 간첩으로 몰아서 지난 43년의 세월을 모질게 산 여정을 보여준 바 있다.

필자는 사법부에 묻고 싶다. ‘제 이름도 쓸 줄 모르는 서씨가 북의 지령을 받았다.’는 사실을 법적 사실로 인정할 만한가? ‘오송회’ 1심 판결에서 낮은 형량과 무죄 선고를 하였는데, -이것도 인정할 수 없지만- 2심에서 중형을 내림으로써 9명의 선량한 대한민국 국민과 그의 가족들을 하늘 없는 세상으로 내몰 수 있는가? 2심을 내린 법관은 승승장구하여 헌법재판소까지 가셨다니, 그 얼마나 자랑스러운 출세인가?

대한민국 정치 발전사에서 많은 사람들이 국회를 주로 비난하지만, 필자는 오히려 국회는 많이 두둔해주고 싶다. 그래도 종종 독재에 맞선 것은 국회가 아니던가! 그러나 철저히 독재의 칼잡이 노릇을 해온 것은 사법부였다. 아직까지도 일반 국민에게 가장 무섭고 근접 불가능한 곳이 법조계가 아닐까? 법은 국민의 권리를 지켜주라고 존재하는 것인데, 국민을 법으로 옭아매 온 것이 대한민국 법조계의 역사는 아니던가?

광주고법 이한경 부장판사는 무죄 판결 소감에서, “법원에 가면 진실이 밝혀지겠지 하는 기대감이 무너졌을 때 …… 이번 사건을 계기로 재판부는 좌로도, 우로도 흐르지 않는 보편적 정의를 추구하겠다 …… 오로지 국민의 자유와 재산을 보호하는 책무에 충실할 것을 다짐한다.”고 하였다. 재삼 ‘오송회’의 무죄 판결과 사법계의 자성어린 발언에 무거운 마음으로 박수를 보낸다. 모쪼록 대한민국 국민이념, 대한민국 하늘 아래에서 당당하게 살 권리를 그 누구도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저 하늘에 문구를 새겨서 걸어두고 싶다.


 * 칼럼은 본지의 논조와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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