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하늘을”
“누가 하늘을”
  • 편집국 기자
  • 승인 2008.12.15 16:17
  • 호수 4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박서림 칼럼위원
신동엽의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는 나의 애송시(愛誦詩)중의 하나이다.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송이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네가 본 건, 먹구름/그걸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아갔다./네가 본 건, 지붕 덮은/ 쇠항아리,/ 그걸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아갔다.”

읊으면서 자성해 본다. 시인(詩人)이 지적한 <너> 중에 나도 속해 있지 않았는가.

철없던 소년기 일본 천황을 하늘로 알았던 일을 생각하면 영 개운치가 않다.

“닦아라, 사람들아/ 네 마음 속 구름/  찢어라, 사람들아/  네 머리 덮은 쇠항아리”

이 대목에서 나는 혹시 비겁하지 않았던가. 과연 소신껏 살았던가 뒤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우려하게 된다.

아직도 우상을 하늘로 알도록 잘못 세뇌된 부류가 있지나 않을까. 이 기회에 스스로 다음과 같은 마음의 경지이기를 염원해 본다.

“아침 저녁/ 네 마음 속 구름을 닦고/ 티없이 맑은 영원의 하늘/ 볼 수 있는 사람들은/외경을/  알리라./  아침 저녁/ 네 머리 위 쇠항아릴 찢고/ 티없이 맑은 구원의 하늘/마실 수 있는 사람은/  연민을/ 알리라/차마 삼가서/ 발걸음도 조심/ 마음 조아리며/ 서럽게/아 엄숙한 세상을/ 서럽게/ 눈물 흘려/살아가리라/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자락 없이 맑은/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이 시를 읊다 보면 한편으로 무명(無明) 속을  헤매고 있는 우리 자신을 보게 된다. 무명에 순치(馴致)되어 살면서도 그것을 생(生)이라 믿고 사는 어리석은 중생(衆生)임을 깨닫게 된다. 어떤 것이 무명(無明)인가.

탐욕과 노여움과 어리석음 곧 탐(貪), 진(瞋), 치(痴) 삼독(三毒)이라는 구름에 가려 참 허공(虛空) 곧 불성(佛性)을 찾지 못한 상태를 말한다. 이제라도 마음을 일신하여 탐욕과 증오(憎惡)하는 마음과 어리석은 소견(所見)을 미련없이 버린다면 티끌 하나 없는 참 하늘을 볼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 칼럼은 본지의 논조와 다를 수도 있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