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가 또 간다
한해가 또 간다
  • 편집국 기자
  • 승인 2008.12.22 13:30
  • 호수 4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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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규 칼럼위원

단풍은 그리 오래가지 아니했다. 노오란 단풍은 아스팔트 위에서 와르르 몰려가며 앞서가던 버스를 따라간다. 한낮에 활동하기 어렵던 늦더위에 벼가 풍년이라며 자위하던 게 며칠 전이었던 것 같은데 가을은 오는듯하다가 겨울이 와 버렸다.

한 장 남은 달력! 봉급봉투 받고 다음 달이면 어디에 썼는지 한 푼도 받지 않은 것처럼 생각이 들 듯 한해가 한 것 없이 그저 월간잡지 표지의 모델 얼굴처럼 스쳐가는 것은 나이가 오십이 넘어서인가? 무슨 일을 열심히 하다가도 지금 이 행위가 의미 없는 생의 일부분인 것처럼 생각되어 손을 놓고 망연자실한 게 한 두 번인가.

지천명! 이 나이에 내 자신이 하는 일임에도 의심하는 우스운 꼴이라니.... 욕심없이 살아가야지. 나로 인해 상처를 입은 주변 사람들께 속죄하며 살아야지. 작은 개울물도 마다하지 않고 놀러와 자맥질하는 쥐오리도 사랑해야지. 열심히 한 해를 되뇌이며 다시 뜨는 해를 보아야지. 머릴 숙이고 다녀야지.

헌데 저녁에 뉴스를 보면 열이 살금살금 치달아 오르기 시작한다. 정치를 한다는 당 대표가 며칠 전부터 비장한 표정으로 전쟁구호를 외치더니 문 걸고 자기들끼리만 국민세금을 쓰기로 했단다.

어느 분은 재산을 국가에 헌납한다더니 몇 개월을 잠잠하다가 주변에서 수근대기 시작하니 이제야 시기와 분위기를 봐서 한단다. 헌납이 무슨 구실을 붙여두고 시기를 고려해서 해야 하나. 쓰임과 시기는 헌납 받은 곳에서 할 일이고 그 행위는 헌납자가 논할 일이 아닌 것 아닌가?

아니지 이런 모든 것이 아마 국가를 위한 위대한 분들의 생각이시겠지. 내 잘못은 더 큰데 왜 남의 잘못을 논하나. 올해부터라도 남의 잘못을 논하지 말자. 특히 정치에 무관심하자.

연하장을 그린다. 부지런히 그려야 연초에 보낼 수 있다. 남들은 별 것 아니지만 내겐 꼬박 한 달이 걸린다.

일년 동안 만남이 소원하고 안부를 자주 하지 못한 분들께 한해 인사를 드리는 것이니 이 또한 부끄러운 일이다. 시간을 내어 일년에 한두 번이라도 꼭 뵈어 술이라도 한잔 나누어야 하는 분들을 이처럼 바쁘다는 핑계로 연하장으로 간단히 인사한다.

연하장만으로도 도저히 인사를 드리지 못하는 분들이 있다. 면목이 없는 그런 사람이 있다.

그럴 땐 인사를 드리지 못한다. 그냥 마음으로만 큰 짐으로 남는 그런 결례로 남는 분들이 없어야 하는데...

마음만 있어서는 안된다. 아내가 가장 싫어하는 게 생일날 남편이 “마음만 크게 있으면 되지 꼭 뭘 해야 하나?”하는 말이라는데...

다가오는 새해엔 머릴 숙이고 다시 한번 연장을 집어 들고 허물어진 이곳 저곳을 손보아 덜그덕 거리는 수레를 끌고 뉘엿거리는 석양을 등지고 고개를 넘어 가보자.


* 칼럼은 본지의 논조와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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