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
  • 편집국 기자
  • 승인 2009.02.21 10:52
  • 호수 4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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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기복 칼럼위원
2009년, 새해는 유난히 밝게 떠올랐다. 저마다 사람들은 희망에 부풀었다. 그러나 세계경제의 추락과 용산 철거민 참사, 강호순 살인 만행 사건, 화왕산 화재 참사 등은 모든 국민들을 불안에 떨게 하고 있다. 함께 손을 잡고 하하호호 웃으며 살아오던 이웃들이 하나, 둘 절망과 좌절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이미 이런 상황이 나에게도 점점 다가오고 있다는 의식이 더욱 불안에 떨게 만들고 있다.

경제대국을 내세우며 등장한 이명박 정부는 경제침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물론 이를 인정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신임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올해 경제성장 목표치를 -2%로 비정하였다. 신임 장관의 입을 통하여 산업대국으로 자리매김한 대한민국이 최초로 마이너스 성장을 하게 된다는 예측이다. 디앤비(D&B)의 무디스 닷컴이나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 등 주요 국가신용평가 기관에 의하면, 대한민국의 경제침체는 올해부터 그 심각성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예견하고 있다.

자타에 의한 견해만 하여도, 올해부터 적어도 당분간은 경제적 어려움에 처할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여야 할 것이다. 지난 반세기 가까이 경제성장과 함께 모든 국민이, ‘배고팠던 시절은 잊자.’, ‘우리 후손에게는 그러한 서러움을 느끼지 않게 하자.’로 일관하였다. 그리하여 정부뿐만 아니라 국민 개개인 모두 경제성장을 제일주의로 여겼다. 지금부터 30년 전에 세계인들은 일본인을 ‘경제적 동물’이라 일컬었는데, 오늘날은 한국인으로 그 통칭이 바뀌었다. 세계에서 ‘돈 많고, 돈 잘 쓰고, 으스대는 종족’ 으로 자리매김 되었다.

경제침체는 우리만의 과제가 아니다. 전 세계적인 문제이다. 그렇지만 우리나라는 그 어느 나라보다 경제대란에 휩쓸릴 위험이 더 크다. 오로지 경제에만 골몰하고 내달리다가 엎어졌을 때, 마치 엘리트 스포츠로 육성된 선수가 신체 이상으로 제 종목을 뛸 수 없게 되었을 때처럼 남는 건 절망밖에 더 무엇이 있겠는가. 앞으로 당분간일지라도 남보다 큰집, 좋은 차, 윤택한 레포츠를 즐기면서 살기 어려울 수 있다. 배고픈 이웃을 체험하며 살아야 할 수도 있다.

우리 모두 삶의 지표를 되짚어 보자.

우선, 경제제일주의 의식부터 탈피할 필요가 있다. 몸체를 갖고 있는 인간으로서 경제문제는 전제적 조건이다. 40여 년 전에 흔히 ‘진지 잡수셨어요?’, ‘밥 먹었냐?’라고 인사하던 말처럼 배고프고 행복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배고프지 않아도 되던 시절도 경제적 노예가 되어 살아왔다. 경제란 테마 이외에도 정치, 사회, 문화, 학문과 과학, 예술, 스포츠 등 수많은 테마가 존재하는데, 이 모든 것들이 경제적 잣대에 의해서 측정되는 한도를 벗어나지 못했다. 따라서 경제 외의 것들에서 삶의 가치를 추구할 수 있게 된다면 경제 침체의 여파를 제어하는데 큰 힘이 될 것이다.

둘째, 그 어느 때보다 공동체 의식을 가져야 할 때이다. ‘지구촌시대’로의 몰입은 결국 ‘줄 세우기’와 ‘세계는 친구, 겨레는 적’을 만들었다. 우리는 진정한 학력이나 품성을 묻기 전에 ‘남보다’ 어떠냐에 치중하고 있다. 이러한 줄 세우기는 나의 짝꿍부터 비롯하여 온 겨레가 물리쳐야할 적이 되어버렸다. 세계인들과 손잡고 잘 살자고 외치면서, 한반도 안에서는 피 안 나는 전쟁으로 살벌하기 그지없다. 이제라도 온 겨레가 먼저 어깨동무를 하고, 세계인을 동반하는 자세로 전환되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마음의 부자가 되어야 한다. 부처님의 마지막 설법인 유교경(遺敎經)에 의하면, “不知足者 誰富而貧 知足知人 誰貧而富(부지족자 수부이빈 지족지인 수빈이부)”라 하였다. 즉, 만족함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부자라도 가난하고,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가난하더라도 부자라는 말이다. 지족(知足)하지 않는 삶은 언제까지고 가난함을 면할 수가 없다. 더욱 중요한 것은 만족을 모르는 삶은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를 가난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어부가 만족을 모르고 밤낮으로 물고기를 잡아낸다면, 텅 빈 바다는 그 어부에게도, 우리 식탁에도 더 이상 물고기를 제공하지 못하게 된다.

이제라도 경제침체에 의연하게 대처하는 자세를 갖도록 노력해 보자. 우리 속담에도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고 하였다. 경제 이외의 가치를 아는 사람들이 콩 하나라도 둘로 나누어 먹으며, 서로 등을 두드려주며 웃어가면서 사는 사람들이 되어보자. 온 겨레가 어깨동무하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세상을 만들어 보자. 궂은 날 뒤에 뜨는 태양은 더 더욱 밝게 빛난다.

<시인/홍주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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