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나무야, 너 언제 꽃 피니?
벚꽃나무야, 너 언제 꽃 피니?
  • 편집국 기자
  • 승인 2009.03.16 15:09
  • 호수 4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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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영 칼럼위원
4교시 슬기로운생활 수업시간, 아이들의 눈동자가 풀어져 있습니다. 새 학년이 돼 긴장감이 풀린 데다 날씨까지 갑자기 따뜻해졌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하품을 하는 녀석, 엉덩이를 들썩거리는 녀석, 벌레라도 붙은 듯 몸을 자꾸 뒤트는 녀석, 몇 안 되는 아이들의 마음이 제 각각 흩어져버렸습니다. 

나는 아이들에게 책을 덮고 운동장으로 나가자고 했습니다. 아이들의 눈동자가 당장 빛이 납니다. 입이 금방 귀에 걸립니다. 환호성을 지르며 신발을 들고 쿵쾅거리며 달려 나가는 놈도 있고, 턱밑에 바짝 다가서서 뭐 할 거냐고 다잡이를 하는 녀석도 있습니다.  

운동장에 아이들이 발자국이 찍힙니다. 촉촉하게 젖은 운동장에 찍힌 한 뼘도 채 되지 않는 발자국에서도 까르르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엊그제 내린 진눈개비로 얼었던 땅이, 어제 오늘 완연한 봄볕으로 새싹이 나옴직하게 부드러워졌습니다.

벚나무에게 다가갑니다. 두어 아름은 너끈히 될 만한 벚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검은 가지를 이리저리 뻗고 서 있습니다. 물기 하나 없이 쩍쩍 갈라졌던 보굿도 기름을 발라놓은 듯 촉촉하게 젖어 생기가 돕니다. 꽃눈과 잎눈도 비늘껍질 속에서 두시럭거립니다. 엊그제 내린 진눈개비가 녹아 메마른 벚나무 가지에 힘을 보태주었기 때문입니다.

“얘들아, 벚나무가 아직 잠자는 모양이다. 언제 꽃을 피울 건지 물어봐라.”

 아이들은 의아해하면서도 늙은 나무를 향해 소리를 지릅니다.

 벚꽃나무야, 너 언제 꽃 필래?”

 벚꽃나무야, 잠만 자지 말고 얼른 꽃 피워라”

 소리를 지르던 아이들은 벚나무에 바짝 다가가 귀를 기울입니다.

“조금만 있으면 꽃이 필거래요”

“모른대요.”

“4월이나 5월쯤 필거래요.”

신이 난 아이들이 이번에는 개나리 울타리로 뛰어가서 또 소리를 지르고 귀 기울여 듣습니다. 꽃샘바람이 미처 덧옷도 입지 않고 뛰어나온 아이들의 품 안으로 파고듭니다. 

지난 겨울은 참 추웠습니다. 눈보라가 휘몰아쳐 봄을 준비하던 꽃눈도 잎눈도 꽁꽁 얼어버렸습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꼭꼭 숨어버린 것들도 허다합니다. 십여 년 전에도 혹독한 추위를 겪은 일이 있습니다. 그때는 앞에 가는 사람 따라잡으려고 냅다 뛰기만 하느라 준비를 못하고 겨울을 맞아 혹독하게 겪었습니다. 이제 꽃바람 맞을 일만 남았다고 좋아했는데, 옆집에 든 된바람이 우리네 삶 한가운데를 휩쓸고 자나가서 그때보다 더 심하게 추위를 겪고 있습니다.

봄이 문 앞에 당도해 있는데도 문을 열어주기 겁날 만큼 춥지만, 추위가 되풀이 되는 것은 더욱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 위한 담금질이라는 것을  잘 압니다. 삭정이가 되어버린 가지도 간간히 눈에 띄지만 땅 속에는 가지보다 더 많은 뿌리가 건재하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다만 다른 때보다 조금 늦잠을 자는 것뿐입니다. 이제 곧 일어나기만 하면 어느 해보다 더 아름다운 봄꽃들이 필거라고 우리는  확신합니다.

‘벚꽃나무야, 이제 그만 자고 꽃을 피워라.’

 나도 아이들과 같이 벚나무를 향해 소리를 지릅니다. 그리고 가만히 귀 기울여봅니다.   

기상청에서 금년에는 다른 해보다 일찍 봄꽃이 필거라고 예보했습니다.

<기산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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