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시대의 용산 참사
불안한 시대의 용산 참사
  • 편집국 기자
  • 승인 2009.04.06 11:33
  • 호수 46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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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승국 칼럼위원
1. 불안한 시대상

용산 참사의 현장에 가보면 불안한 기분이 든다. ‘나도 저렇게 당할 수 있구나~’ 하는 불안한 기분이 든다. 나도 사랑하는 처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 망루에 올라가 처절하게 싸우다가 저렇게 죽을 수 있구나 하는 섬뜩한 생각이 든다. 섬뜩한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 불안한 나의 존재(실존적인 존재)를 감지하게 된다.

용산 참사의 희생자가 된 철거민들이 사망 당일에 느꼈을 아찔한 현기증이 불안의 현주소이다.

살기 위해 망루에 올라간 철거민에게 갑자기 죽음이 닥쳐오자 무슨 생각을 순간적으로 했을까? 불안이라는 기분이 철거민들에게 엄습했을 때 철거민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삶이라는 낯익은 상태에서 졸지에 죽음이라는 낯선 세계로 빠져든 철거민들(용산 참사의 희생자들)에게 닥친 불안한 기분은 아주 낯선 것이다. 불안은 우리가 낯익은 세계로부터 낯선 세계 속으로 갑작스럽게 떨어져 들어갔을 때의 기분이다.

이러한 불안한 기분을 용산참사와 결부시켜 풀이하면 다음과 같다.

상대적으로 민주주의적인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낯익은 세계에서 상대적으로 비(非)민주적이어서 ‘낯선’ 이명박 정권으로 갑자기(단 몇 달 사이에) 전락한 ‘한국 사회의 불안’. 무언가 불길한 감정에 휩싸이는 국민들의 불안한 기분. 용산참사 철거민을 죽음으로 내몬 특공대식 진압이 안겨주는 불안한 기분.

갈수록 불안한 기분이 드는 우리는 이명박 정권과의 낯섦에 익숙해질 시간도 없이, 우리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낯익은 세계를 붙잡을 여유도 없이 용산참사를 당했다. 이명박 정권이 펼치는 낯선 세계가 갑작스럽게 우리들, 우리의 이웃인 용산 철거민들을 덮쳤다. 우리가 발 뻗고 잔 그날 새벽에 낯선 세계의 호위병인 진압경찰이 저승사자로 둔갑하여 용산 철거민 다섯 명을 명부(冥府)로 데려갔다.

이명박 정권 아래에서 불안은 이렇게 갑자기 눈 깜짝할 사이에 생겨나고 앞으로도 생겨날 것이므로 불안하다. 철거민을 죽음으로 내몬 이 명박 정권의 공권력을 생각하기만 하면 원초적으로 불안한 기분이 든다.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불안에 사로잡힌다. 나도 용산 철거민처럼 어느 날 갑자기 죽을지 모른다는 원초적인 불안감이 엄습한다. 이게 바로 이명박 정권이라는 낯선 세계와 더불어 겪는 불안한 시대상이다.


2. 장로 대통령에게 원죄 묻기

이명박 대통령이 용산참사 때 진두지휘한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를 감싸고 돈 것을 보면, 회개는커녕 죄를 철거민들에게 돌리고 있는 것 같다. 아직 용산 참사의 진상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실정법적인 ‘죄와 벌의 상호관계’에 관해 단적으로 말하기 어렵다. 오히려 이에 앞서 인간적인 차원 즉 인간의 실존, 인간 본디의 양심·양식(良識), 인격 수양, 인간 됨됨이의 차원에서 죄와 벌을 거론하는 게 좋을 듯하다.

어처구니없게도 공권력이 실정법적으로 철거민들(용산참사의 희생자들)에게 죄를 전가시키고 있으므로, 이명박 대통령 스스로 ‘용산참사 희생자들에게 원죄가 있나? 정권 쪽에 원죄가 있나?’를 규명하기 위한 ‘원죄 묻기’를 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절대적으로 고독한 단독자 이명박이 양심의 소리를 들으며, (용산참사의 총체적인 책임을 지는 뜻에서) 자신의 원죄부터 캐물어야할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원죄를 묻는 것은, 그를 무조건 규탄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가 장로 대통령이므로 하나님 앞에선 단독자로서 양심의 소리(소크라테스의 ‘다이모니온daimonion’)를 들으라는 요청이다. 지난 1년 동안 민중들의 삶을 옥죈 결과가 용산 참사로 드러났고 그게 바로 용산 참사의 원죄임을 고백하라는 요청이다.

용산 참사는 불안한 시대의 지속선상에서 발생한 불행한 사태이다. 이러한 불행한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라도 ‘용산 참사는 내 탓!’이라고 회개하며 사과하는 ‘인간 됨됨이가 성숙한 장로 대통령’이 되길 기원하면서 이 글을 맺는다.

<평화활동가. 전 월간 ‘말’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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