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물에 사는 조약돌이 되고 싶다
맹물에 사는 조약돌이 되고 싶다
  • 편집국 기자
  • 승인 2010.01.25 12:04
  • 호수 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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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 기 복 칼럼위원

▲ 권기복 칼럼위원
맹물이 맹물 같은 세상에서는 바보였다.

-어휴, 이 맹물!

어릴 적에 눈치 없어 자주 듣던 말이다.

-맹물에 조약돌을 삶은 맛이다.

이 말은 아무런 맛이 없다는 우리 속담이다.

이제 바보 같은 맹물이 명품이다.

이제 맛이 없는 맹물이 보약이다.

맹물 같지 않은 세상이기에

맹물이 바보가 아니다.

맹물이 물의 참맛이다.

나에게 남겨진 삶의 맛을 찍어본다.

-맹물에 조약돌이 사는 맛이다.

그리 살고 싶다.

-졸시 <배경.10-맹물에 대하여> 전문

어느 날 갑자기 ‘맹물’이란 말이 생각나서 국어사전을 펼쳐봤다. ‘아무 것도 타지 아니한 물’과 ‘하는 것이 싱겁고 야물지 아니한 사람의 별명’이라고 씌어 있었다.

평소에 알고 쓰던 말과 별 차이가 없었다. 필자가 유년시절에 자주 듣던 별명이고, 어디서든 흐르는 물이기도 하였다. 한여름에 뛰어놀다가 갈증이 나면 냇가로 달려가서 팔을 담그고, 그 너머로 넘치는 물을 마시곤 하였다. 그저 갈증을 달랠 뿐이었다. 면소재지만 하여도 콜라나 환타 등 달콤한 음료수가 있기에 맹물은 어쩔 도리가 없을 때만 찾던 물이었다.

지금은 어떠한가? 중학생들 소풍 가방에서 콜라나 환타 등은 찾기가 어렵다. 그러나 꼭 하나씩 챙긴 것은 바로 맹물이다. 그것도 음료수 가격에 비견하는 비용을 지불하고 구입한 것이다. 달콤하고 맛깔 나는 음료수가 지천인데, 왜 중학생들조차도 아무 것도 타지 아니한 물을 찾을까? 가게에서 맹물인 생수를 구입하는데 중학생들이 지천명(知天命, 50세)으로 들어서는 필자보다 기꺼워하는가? 아마, 필자에게는 경제적 지불없이 구하던 것인데 돈을 내야 하나? 하는 인식 때문일 것이다.

17년 전 즈음에 <서림> 3집인가에 연작시 형태로 쓴 졸시도 생각난다. 미래적 상황에 대해 쓴 것인데, 부잣집은 방이나 정원 등에 공기 청정기를 설치하여 청정하게 생활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그 집의 울타리에 몰려들어 코를 박고 맑은 공기를 얻어 마시느라 부산을 떨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아직 부잣집의 정원까지 설치했다는 말은 못 들었지만, 공기 청정기도 불티나게 잘 팔리고 있다. 그럼, 그 다음에 우리는 또 무엇을 위해 경제적 비용을 들여야 할까?

지구촌 시대를 맞이하여 세계 방방곡곡을 이웃집 드나들 듯이 하고 있다. 스마트 폰의 탄생으로 전화, 영상, 인터넷, 사전, 카메라, 팩스 등의 다기능을 한 손아귀에서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참, 요지경 속이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

왜 그럴까? 우리가 얻은 편익도 지대하지만 기회비용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가장 희소가치를 느끼지 못하였던 물과 공기마저 경제적 부담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다보니, 한정적인 자원들에 대한 위기의식도 함께 갖기 때문일 것이다.

맹물에 사는 조약돌은 제 빛깔을 갖고 있다. 깨끗한 바닷가나 강물 속에 있는 조약돌은 때를 타지 않기 때문이다. 자기 고유의 색깔과 무늬를 띄고 존재할 수 있다.

요즘 경제 발전과 과학기술의 발달로 대중이 한 색깔, 한 무늬로 동일화 되고 있다. 이것도 우리 사회를 오염시키는 오염원이 되고 있다. 흐려진 물 속의 조약돌은 제 빛깔을 갖지 못한다. 언제 어디서든지 팔뚝만 들이대면 마실 수 있던 맹물이 그립다. 아직 시골에 살아서 더렵혀진 공기를 의식하지는 못하지만, 공기 청정기를 두고 살아야 하는 세상을 만나기가 정말 싫다. 맹물에 사는 조약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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