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미완성
인생은 미완성
  • 뉴스서천
  • 승인 2002.12.12 00:00
  • 호수 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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귓불이 시리도록 찬바람이 산등성이를 휘몰아치는 어느 날. 한 조각 햇볕이 머무는 인적 없는 광교산(경기도 용인시 소재) 비탈에 을씨년스럽게 누운 낙엽을 헤집고 앙상하게 뻗어 나온 진달래 나뭇가지, 연분홍 꽃망울 하나 덩그러이 걸려있다.
철을 잃은 여정의 머뭇거림일까.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남은 긴 여로일까.
마지막 캘린더를 남겨 놓은 시점에서 한해를 돌이켜 본다. 일생에 두 번째 맞는 임오년. 이제는 살만큼 살았구나, 회한·욕망·오만·불의·실망·불화·아쉬움의 스펙트럼(spectrum)이 하얀 눈 속에 신기루처럼 펼쳐지는 지난날들. 정말 살만큼 살았구나. 그래서 새롭게 시작하는 인생의 첫발은 모든 것이 새로웠고 각오도 당찼다.
새로운 설계에 의해서 계획적이고 보람있는 삶의 디딤돌을 놓겠다는 굳은 각오는 이뤄졌는가. 이제는 남에게 봉사하며 헌신하는 자세로 살아보겠다는 마음은 지켜졌는가. 자녀들에게 온전한 정신을 심어주고 바른 길을 걸을 수 있도록 모범을 보이겠다는 약속은 실천했는가. 가정이 평화와 화목의 보금자리가 되도록 솔선하겠다는 결의는 이루어졌는가. 모든 이에게 행운이 있기를 기원하고 화합하는 관계를 지키겠다는 의지는 변함이 없었는가. 나를 우선 하기보다 남을 섬기는 마음과 자세를 한번이라도 보여 줬는가. 나로 인하여 이웃에게 아픔과 괴로움을 주지 않겠다는 각오는 여전하였는가. 과연 이 사회에서 꼭 필요한 인물이며 또 그러한 역할은 하였는가.
남의 불행에 눈물은 흘려 보았는가.
미선이와 효순이의 어이없는 죽음에 요원의 불길처럼 일어 난 촛불시위 한번 참가해 봤던가. 진정으로 그 아련하고 애끊는 죽음을 위로하며 안식을 누릴 것을 미사 때 빌어 주었던가.
두 소녀의 어머니와 아버지의 피 토할 슬픔을 한번쯤 가슴에 새겨 보았는가. 오열하는 두 소녀의 친구들과 선생님의 “잘 가, 잘 가라고…” 외쳐대는 비통의 TV장면에 숙연해져 보았던가. 연일 SOFA를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인파를 편안한 sofa에 앉아 구경만 하지 않았던가.
그렇게 남은 인생은 보람되고 희망차게 첫 발을 내디뎠건만 또 한해를 회고해 보니 한 줌 남은 것이 없는 사고의 헛바퀴를 돌려 버렸다는 사념에 쌓인다.
그래서 광교산 비탈의 진달래도 제 철이 아닌 줄은 번연히 알건만은 아직도 피워야 할 여로가 남아있어 꽃망울을 만든 모양이다.
그러나 아쉬움과 미련을 간직한 채 꽃은 지고 말겠지. 아쉬움·미련을 남기려거든 찬바람을 가르고 피지나 말 것이지. 이렇게 ‘인생은 미완성’으로 끝나는가.
김지용 칼럼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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