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풀 이야기
■ 우리풀 이야기
  • 김관석 시민기자
  • 승인 2012.11.05 13:24
  • 호수 6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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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을 내다보는 풀씨들

▲ 도꼬마리

 

가을이 깊어가며 나무들은 옷을 훌훌 벗어버리고 풀들은 바삭바삭 말라간다. 이 무렵 오목눈이나 딱새, 박새들은 분주하다. 온갖 풀들이 맺어놓은 열매를 따먹느라 부지런히 풀섶을 오간다.
이들 산새들은 사람 사는 데로 먹이를 찾아 모여들기도 한다. 아파트 옆 공원은 박새나 오목눈이들이 아까시나무에서 단풍나무로 떼를 지어 우르르우르르 몰려다닌다. 팍팍하기만 한 사람 사는 이곳에 그래도 먹을 게 있나 보다. 첫 겨울을 준비하는 어린 박새는 이 겨울을 잘 견디어낼 수 있을까?

▲ 민들레

 


초췌한 몰골로 말라버린 한해살이 풀들은 풀씨로 겨울을 난다. 땅에 떨어진 풀씨는 새로운 삶을 품고 있다. 그러나 어디로 날아갈는지, 날아간 곳이 뿌리내리고 살 만한 곳인지 미리 알 수도 없다. 가을바람에 흩어지는 저 수많은 풀씨 가운데 내년 봄에 다시 싹을 틔우는 풀씨는 얼마나 될까.


그러나 숲 가장자리에서 열매를 빼곡이 달고 서있는 도꼬마리를 보면 그렇게 걱정할 일도 아니다. 시커멓게 말라가는 큰도꼬마리 열매는 고슴도치마냥 가시가 무성하다. 새들은 이들에게 접근하기도 어렵다. 이런 형체로 열매를 널리 퍼뜨릴 수 있을까. 그러나 이것은 열매를 만지지 못하게 하려는 게 아니라 오히려 들러붙게 하려는 가시다. 도꼬마리 열매는 짐승털이나 사람 옷에 붙어서 퍼져나간다.

▲ 익모초

정말 진드기처럼 잘도 붙는다. 가시 끝이 갈고리처럼 휘어져서 살짝만 닿아도 낚아채듯 착 달라붙는다. 여간해서 떨어지지 않는다.
도꼬마리 열매를 까 보면 씨앗 두 개가 사이좋게 들어 있다. 이 두 개의 씨앗이 서로 하는 역할이 다르다 한다. 한 개는 이듬해 바로 싹을 틔우지만 다른 한 개는 바로 싹 틔우지 않고 더 나은 조건이 되는 때를 기다린다. 도꼬마리뿐 아니라 많은 풀씨들이 이처럼 역할이 다른 두세 개 씨앗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제비꽃이나 물봉선은 꽃을 피워(열린 꽃) 만든 씨앗과 꽃을 피우지 않고(닫힌 꽃) 만든 씨앗이 서로 다른 역할을 한다. 구절초 같은 국화과 꽃은 안쪽에 잎이 없는 관상화랑 바깥쪽에 잎을 한 장 씩 달고 있는 설상화 꽃이 피는데(두상꽃차례), 관상화에서 만들어진 씨앗이 더 멀리 날아가고 잠자는 기간도 길다.

▲ 강아지풀

 명아주 씨앗은 검정색과 갈색 두 종류다. 검정색은 봄에 바로 싹을 틔우지만 갈색은 조건이 맞을 때까지 땅 속에서 잠을 잔다. 풀들은 이렇게 바로 싹 틔우는 씨앗과 조건이 맞을 때까지 기다리는 씨앗, 멀리 날아가는 씨앗과 그렇지 않은 씨앗을 만들어 경쟁도 줄이고 좋은 기회도 늘리는 것이다.


땅속은 온통 잠자는 씨앗들로 가득하다. 겨울바람에 뒹구는 풀씨가 대책 없이 굴러다니는 것만은 아닌 것이다. 도꼬마리 씨 수명은 16년쯤 된다니까 적어도 10년쯤은 내다보고 준비한 것들이다. 작은 풀씨 하나도 이처럼 먼 앞날을 내다보며 삶을 준비하고 있는데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즉흥적으로 살아가는 우리네 인생을 돌아보면 부끄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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