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눈의 천사(11)
파란눈의 천사(11)
  • 뉴스서천
  • 승인 2003.05.23 00:00
  • 호수 17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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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를 만나러 가는 길
처음 집에 왔을땐 할 일도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많았는데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날수록 시간은 더디게만 흘러갔습니다. 병에 걸리기 전엔 하루가 36시간쯤으로 늘어나길 바랬었는데…….
엄마는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모습을 보기만 하면 “할 일은 다했니?”라고 물으셨었습니다.
숙제에 일기에 학습지까지 쫘악 밀려있다는 걸 아셨거든요.
“영어 테이프는 들었니?” “옆집 찬식이는 이번 시험에 올백 맞았다는데, 아휴, 또 게임이야?”
엄마는 이제 그런 잔소리를 하지 않으십니다.
대신 “자아, 오늘 열이 있나 한번 볼까?” “약 먹을 시간이다.” “오늘 병원 가는 거 알지?”
라고 다정하게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나는 정말 이상하게도 엄마의 화난 목소리가 그립습니다. 다른 아이들이 들으면 웃기다고 하겠지만요.
오늘은 모처럼 엄마와 함께 아파트 주변을 산책했습니다. 연우를 어린이집 차에 태워보내고 아파트 뒤에 있는 작은 산에 올라갔습니다. 조금이라도 힘이 들면 말하라고 하시며 엄마는 내 손을 꼭 잡고 걸으셨습니다.
산에는 아카시아 꽃이 향기를 내뿜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아카시아의 계절입니다’ 라고 나무들이 말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얼마를 더 걸으니 청설모 한 마리가 길 가운데에 오똑 서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가까이 다가가도 모르는체 한 방향만 바라보고 서 있었습니다.
“어라, 저것 좀 봐라. 겁이 없네.”하시며 엄마가 발을 쾅쾅 두드린 다음에야 부리나케 나무 위로 올라갔습니다. “와, 빠르다! 엄마 진짜 빠르다.”
“우리 아들도 저렇게 빨리 달렸었는데. 지난번 운동회 때 말이야. 너 1등 했었잖아. 팔에 찍힌 1등 도장 지워진다고 며칠 동안 안 씻은거 기억안나?”
“맞아. 결국 엄마한테 혼나고 비누로 씻었잖아. 그런데 엄마, 찬식이 말이야 나보고 복사해달라고 쫓아다녔었다.”
“복사?”
“응. 내 팔에 찍힌 도장에 매직을 발라서 자기 팔에 똑같이 찍어달라고 하는거야. 원래 꼴등한 아이들이 그렇게 해.”
“아, 그게 복사구나. 그래서 해 줬어?”
“응. 내가 누구야? 착한 선우 아니야? 해 줬지.”
“글세, 정말 착한 선우 맞을까? 공짜로 해줬을 리가 없는데…”
“히히히, 엄마는 정말 모르는게 없어. 아이스크림 하나 사줘서 먹었어.”
“그럼 그렇지.하하하”
학교 앞 문방구에서 아이스크림 하나 얻어먹고 1등을 복사해주는 내 모습이 떠오르는지 엄마는 자꾸 걸어가면서 웃으셨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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