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흥 출신 탈북가수 지해박씨
함흥 출신 탈북가수 지해박씨
  • 허정균 기자
  • 승인 2015.08.17 11:29
  • 호수 77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화양면에서 허창억씨와 새로운 삶 시작

▲ 지해박씨와 허창억씨
지해박씨는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났다. 그곳에서 경공업전문학교를 졸업했는데 타고난 미모와 노래 솜씨로 그녀는 예술선전대 가수로 선발됐다.

예술선전대란 인민경제 과업을 성취하기 위해 노동현장을 순회하며 근로대중을 위해 위무 공연을 함으로써 의욕과 사기를 높이는 일을 하는 일이 주된 일이다.

그는 자유 결혼으로 결혼을 했는데 남편과 성격 차이로 이혼했다. 이것이 그녀에게 큰 오점으로 작용했다. 노동자들의 모범이 돼야 함에도 가정을 지키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게 된 것이다. 결국 선전대에서 쫓겨났다.

이후 한 사석에서 흥을 돋우기 위해 노래를 부르게 됐는데 이것이 화근이 됐다. 남조선 노래를 불렀다는 것이다. 그가 부른 노래는 ‘홍도야 우지 마라’였다. 누군가 밀고를 해서 그는 ‘수정주의 날라리’로 비판을 받고 노동교화소로 보내졌다. 이곳에서 2년 반 동안 견디기 어려운 생활을 하고 다시 나오니 이웃들이 모두 등을 돌리고 냉담한 시선을 보냈다.

그는 98년 9월 1일 그는 중국으로 갔다. 기회를 보아 남한으로 갈 작정이었다. 한국인 목사의 도움으로 그는 2002년 베트남-태국-캄보디아를 경유하여 2002년 한국에 왔다. 한국에 온 후 북한의 인권 상황을 알리는 일을 하게 되었다. 미국 상원 청문회에 나가 증언도 하고 동유럽에 다녀오기도 했다. 이후 부산에서 예술단원으로 활동하다 지난 해 말 서천 사람 허창억씨를 알게 되었다.

화양면 창외리에서 독신으로 사는 허창억씨는 어렸을 때 어머니를 위해 한 일을 얘기했다. 용돈을 조금씩 모아 고생하시는 어머니를 위해 보약을 해드렸다는 것이다. 어머니가 그를 안고 눈물을 흘렸다 한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그는 어머니를 떠올리며 그가 정성과 사랑을 다 바쳐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나기를 기도했다.

그러다 인터넷을 통해 지해박씨를 알게 되었고 그를 찾아 부산으로 갔다. 허씨는 진실을 얘기하며 지씨에게 청혼을 했다. 지씨와 나이차가 많지만 허씨는 그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을 원했다.
“나보다 나이가 적으면 나중에 내가 돌봐줄 수 없잖아요.”

지씨는 마침내 허씨의 마음을 받아들이게 됐고 그를 따라 지난 7월초 서천으로 왔다. 파란만장한 인생 역정에서 지친 영혼을 서천에 내려놓기로 결심한 것이다.

허창억씨는 자동차 수리 부분에서 기능을 가지고 있고 이 분야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그의 집 마당에 시설을 차려 놓고 자동차나 농기계 수리를 하는 것이 생업이다. 그의 명성을 듣고 부여나 논산에서까지 찾아온다고 한다.

지해박씨가 함흥에서 경공업전문학교를 졸업한 것이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자동차를 수리 하는 데 유력한 조력자가 된 것이다.
지씨는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 그가 가진 예능 분야에서의 재능을 봉사활동에 활용하고 싶다는 소망을 말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