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면 ‘벼농사를 이야기하는 사람들’ 박병구 대표
당시까지는 중국 후난성 양쯔강 유역에서 출토된 볍씨(1만1000년 전)가 최고였다. 한반도에서는 경기도 김포의 4000~3000년 전 볍씨, 평양 대동강가의 3000~2500년 전의 볍씨가 가장 오래된 것들이었다. 학계는 이를 토대로 벼농사가 6500~1만년 전 인도의 아삼, 중국의 윈난 등지에서 발생해, 중국의 화중지방을 거쳐 3000~4000년 전 한반도에 전파된 것으로 여겼다.
이런 가설을 소로리 볍씨는 뿌리부터 흔들어버렸다. 오히려 벼농사가 한반도에서 시작돼 이것이 인도·중국 등으로 이동했다는 가설이 가능해진 셈이다.
인류가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부터 정착생활을 시작했다. 이들이 처음 정착한 곳은 강하구의 바닷가였다. 그 이유는 농사를 지으며 정착생활을 하면 별도의 염분을 섭취해야 했기 때문에 이에 유리한 강 하구 지역이 정착생활을 시작하기에 유리하다. 세계4대문명의 발상지 역시 큰 강 하구지역이다.
강 하구에 정착한 선사시대 사람들은 차츰 문명을 쌓아 내륙으로 진출했다. 내륙에서는 강 하구에서 소금을 조달하지 않으면 생활을 할 수 없다. 금강유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금강 중·상류 지역에 분포한 수많은 선사문화유적들은 금강하구 서천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봐도 무리는 아니다. 소로리 볍씨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러한 유전자가 남아 있기 때문인지 서천군은 충남에서도 단위면적당 벼 생산량이 가장 높다. 또한 충남은 한국에서 가장 높으며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높다. 서천의 벼농사 기술은 세계 최고이다.
그러나 쌀 수입 개방으로 인한 쌀값 폭락으로 우리 농업은 위기에 처해 있다. 특히 우리 민족의 목숨인 쌀이 이처럼 푸대접을 받아도 되는 것일까.
이러한 가운데 기능성 쌀 생산단지 조성을 통해 어려움을 극복하는 영농법인이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한산면에 있는 영농법인 ‘벼농사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하 벼이사)이다. 지난 20일 영농법인 대표 박병구씨를 만나 그들이 벼농사 이야기를 들었다.
쌀가공협회의 일원인 CJ는 이 쌀을 이용해 기능성쌀을 만들어 시판한다. 예전에는 수입쌀에 의존했다 한다.
벼 종자는 CJ가 요구하는 ‘보람찬’이라는 종자를 이용했다. 이 종자는 삼광벼와 함께 밥맛이 좋은 것이 특징이며 다른 품종에 비해 10% 정도 생산량이 많다고 한다. 벼 수매가가 타 품종에 비해 40kg당 1000원이 더 낮지만 수확량이 많다보니 생산자에게는 더 이익이다.
박병구 대표는 “판로 걱정을 안하고 농사를 지을 수 있어 마음이 편하다”고 말했다. 안정적 계약재배로 유통의 어려움을 극복한 것이다.
농업기술센터 석희성 소장은 “오는 2017년까지 기능성 쌀 생산단지를 300ha(계약물량: 3300톤/년)로 확대해 보다 많은 농업인들이 안정된 생산과 수익을 올릴 수 있도록 기술지원을 강화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기능성 쌀 소비시장이 얼마나 확대될지는 미지수이다. 시장 여건에 따라 계약조건도 바뀔 수 있다. 미래를 설계하며 안심하고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것은 농민들의 소박한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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