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사전을 찾아보니 당치 않은 일을 억지로 하려는 고집이라 설명하고 있다. 이외에도 무리(집단), 뿌리째 떠낸 잔디덩이, 물에 뜨는 엮은 토막 등이 있었다.
물론 관점에 따라 그 표현과 해석이 달라질 수 있겠으나 언제부터인지 이러한 ‘떼’가 우리 주위에서 매우 낯익게 다가오는 것 같다. 그것도 사전의 뜻을 모두 포함하는 것처럼 말이다. 최근에 일어나고 있는 연대파업과 시위투쟁, 이로 인한 계층간의 갈등과 충돌, 심지어는 극단적이며 배타적인 각양 각색의 모습들이 이와 같은 생각을 해보게 한 이유이다.
동시에 과연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만들고 있는지도 궁금해졌다. 이미 고질적인 병폐로부터 예견되어 올 것이 온 것일까? 아니면 살 만하니까 나타난 새로운 병증(病症)인가?
먼저 이와 같은 현상들을 개혁과 혁신으로 나아가는 하나의 과정이라 해석해 본다면 우선은 무엇을 어떻게 바꾸겠다는 분명한 목표제시와 방향설정, 객관 타당한 내용들이 먼저 제시되어야 하는데 또한 그 주체가 누구더라도 강한 실천의지와 구성원 전체의 공감대 형성이 우선일진데 왠지 힘 아닌 힘으로써만 서로가 서로를 보고 자신들의 입장만을 이해하라는 모습들로만 비춰지는 느낌이 앞선다.
만약 사실이라면, 이는 분명코 변화와 변덕도 구분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이자 다들 무책임한 행동만을 노출시키는 또 다른 부끄러움의 연속으로만 이어질 것 같다.
다음으로는 거의 집단문화에 익숙해진 상태 속에서 개인적으로 말해야 할 때엔 당당히 말하지 못하고, 뒤에서만 이러쿵저러쿵 쑤군대는 좋지 못한 습관들끼리 뭉쳐 다시금 집단이라는 수단을 빌려 실제적으론 개인적인 안위만을 추구하려는 모습이라면, 이는 실로 불행한 모순의 시작이자 신종의 현대병으로 자리잡을 것 같다. 만약 이것을 부정하고 싶다면, 집단이 지니고 있는 일종의 공리(公利)와 공생(共生)원칙에 부합하고 특히, 아니면 말고라는 식의 불분명한 감정과 태도가 없어야 할 것이다.
전통적으로 유지되어 온 수많은 미덕(美德)의 자리에 그저 개인적인 영욕만이 채워지는 의심의 소지가 전혀 없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작년 이맘쯤 우리나라는 월드컵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러 내면서 어느 누구부터라 할 것 없이 모두가 한번쯤은 대∼한민국을 외쳐보았다. 이는 매우 아름다운 모습이었고 다른 나라 사람들이 부러워했던 우리만의 힘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시간을 보내면서 과연 축구사랑이라는 본질과 대회개최라는 자긍심에서 그 같은 모습을 보였는지를 곱씹어 본다.
텅 빈 프로축구장의 지금모습과 작년의 빨간색 물결을 대비해 보면서 동시에 지금의 사회정세와도 비교해보면서 말이다. 나 자신부터 보다 책임감 있게 이웃들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겠다.
<장인식/ 칼럼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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