떼~ 한민국!
떼~ 한민국!
  • 최현옥
  • 승인 2003.08.29 00:00
  • 호수 18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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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창 대구에서는 제22회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가 진행중이다. 개막을 며칠 앞두고 북한의 생떼(?)와 같은 태도를 진정시키며 시작한 행사이기에 남다른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는 보도를 접하면서 어쨌든 우리나라를 대표해 땀흘리고 있는 선수들의 좋은 선전을 기대해 봄과 동시에 문득 ‘떼’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과연 어떠한 경우에 이런 표현을 하게 되는지를 말이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당치 않은 일을 억지로 하려는 고집이라 설명하고 있다. 이외에도 무리(집단), 뿌리째 떠낸 잔디덩이, 물에 뜨는 엮은 토막 등이 있었다.
물론 관점에 따라 그 표현과 해석이 달라질 수 있겠으나 언제부터인지 이러한 ‘떼’가 우리 주위에서 매우 낯익게 다가오는 것 같다. 그것도 사전의 뜻을 모두 포함하는 것처럼 말이다. 최근에 일어나고 있는 연대파업과 시위투쟁, 이로 인한 계층간의 갈등과 충돌, 심지어는 극단적이며 배타적인 각양 각색의 모습들이 이와 같은 생각을 해보게 한 이유이다.
동시에 과연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만들고 있는지도 궁금해졌다. 이미 고질적인 병폐로부터 예견되어 올 것이 온 것일까? 아니면 살 만하니까 나타난 새로운 병증(病症)인가?
먼저 이와 같은 현상들을 개혁과 혁신으로 나아가는 하나의 과정이라 해석해 본다면 우선은 무엇을 어떻게 바꾸겠다는 분명한 목표제시와 방향설정, 객관 타당한 내용들이 먼저 제시되어야 하는데 또한 그 주체가 누구더라도 강한 실천의지와 구성원 전체의 공감대 형성이 우선일진데 왠지 힘 아닌 힘으로써만 서로가 서로를 보고 자신들의 입장만을 이해하라는 모습들로만 비춰지는 느낌이 앞선다.
만약 사실이라면, 이는 분명코 변화와 변덕도 구분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이자 다들 무책임한 행동만을 노출시키는 또 다른 부끄러움의 연속으로만 이어질 것 같다.
다음으로는 거의 집단문화에 익숙해진 상태 속에서 개인적으로 말해야 할 때엔 당당히 말하지 못하고, 뒤에서만 이러쿵저러쿵 쑤군대는 좋지 못한 습관들끼리 뭉쳐 다시금 집단이라는 수단을 빌려 실제적으론 개인적인 안위만을 추구하려는 모습이라면, 이는 실로 불행한 모순의 시작이자 신종의 현대병으로 자리잡을 것 같다. 만약 이것을 부정하고 싶다면, 집단이 지니고 있는 일종의 공리(公利)와 공생(共生)원칙에 부합하고 특히, 아니면 말고라는 식의 불분명한 감정과 태도가 없어야 할 것이다.
전통적으로 유지되어 온 수많은 미덕(美德)의 자리에 그저 개인적인 영욕만이 채워지는 의심의 소지가 전혀 없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작년 이맘쯤 우리나라는 월드컵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러 내면서 어느 누구부터라 할 것 없이 모두가 한번쯤은 대∼한민국을 외쳐보았다. 이는 매우 아름다운 모습이었고 다른 나라 사람들이 부러워했던 우리만의 힘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시간을 보내면서 과연 축구사랑이라는 본질과 대회개최라는 자긍심에서 그 같은 모습을 보였는지를 곱씹어 본다.
텅 빈 프로축구장의 지금모습과 작년의 빨간색 물결을 대비해 보면서 동시에 지금의 사회정세와도 비교해보면서 말이다. 나 자신부터 보다 책임감 있게 이웃들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겠다.
<장인식/ 칼럼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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