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환영의 그림책 세상/제12화 - 이 아이들은 자라서 어떤 이야기가 될까?⓵
■ 김환영의 그림책 세상/제12화 - 이 아이들은 자라서 어떤 이야기가 될까?⓵
  • 김환영 시민기자
  • 승인 2018.03.29 18:26
  • 호수 9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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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길》(로드 브라운 그림, 줄리어스 레스터 글, 김중철 옮김/ 낮은산2005)
관처럼 좁고, 캄캄한 그런 판자 위에
차곡차곡 쌓여 있네…산 채로, 산 채로

“병든 사람과 죽은 사람은 헌신짝처럼 바다에 내던져졌다. 그들은 가슴이 뛰지도 않았고, 눈물을 흘리지도 않았고, 소리쳐 울부짖지도 않았다.” 
  
《자유의 길》(From Slaveship to Freedom Road, 로드 브라운 그림, 줄리어스 레스터 글)의 첫 문장입니다. 이 책은 그동안 제가 만난 그림책 가운데 가장 고통스러운 책입니다. 그래서 글을 쓰려고 할 때마다 몸이 아플 지경이었지요. 책은 두 가지 방식으로 말을 겁니다. 하나는 그림과 대응하는 시적인 글이고, 이들을 잇는 서사가 또 다른 한 축입니다. 필요할 때마다 두 가지 방식을 매우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있어요.
  
“차곡차곡 쌓여 있네. 관처럼 좁고, 관처럼 캄캄한, 그런 판자 위에 똑바로. 차곡차곡 쌓여 있네. 산 채로, 산 채로, 그렇게 산 채로.” 
  
그림은 천장까지 올라간 겹겹의 선반에 빼곡히 누운 사람의 머리와, 어깨와, 발바닥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무거운 쇠사슬과 족쇄로 굴비처럼 엮어 뉘어놓은 장면을 통해 흑인들이 노예선에 실려 물건과 함께 어떻게 ‘운반’되었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주지요. 이 그림만으로도 그곳의 신음소리와 냄새와 공기까지 충분히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림책 《자유의 길》은 독자에게 끝없이 ‘상상해 보기’를 제안합니다. 상상을 통해 ‘그들이 되어보기’를 요청하는 것이지요. “상상한다는 것은 과거에 살과 피와 영혼을 불어넣는 일”이라 말하면서요. 

<상상해 보기1>
작가는 말합니다. “맑은 날, 갑자기 우주선이 날아와 낯선 피부색의 사람들이 너를 우주선으로 끌고 가”서 “넌 알지도 못하는 낯선 곳에 있고, 그곳 사람들은 네가 들어본 적도 없는 말로 이야기”를 하고 있으며, 게다가 “그들은 너를 다치게 할 수도, 병신으로 만들 수도, 죽일 수도 있는 무기를 들고 있다”고. “네가 누구인지 관심도 없”으며, 다만 “넌 그들의 노예”일 뿐이라 말하면서 독자를 그림책 속에 부려놓지요.

그들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들어야 하는 말은 “깜둥이”였으며, “말이란 채찍처럼 상처를 남”긴다고 작가는 말합니다. 그리고 상처가 어떻게 깊어지는지 구체적으로 예를 들지요. 백인들은 “어느 날, 여동생 매기를 경매대 위에 세우”고 “웃옷을 찢”습니다. 여동생은 젖가슴이 드러나게 되고, 백인들은 “많은 애들에게 젖을 먹일 수 있겠다며 낄낄”거립니다. “자, 사세요, 사! 여기 깜둥이들 가운데 하나만 사도 일 년만 지나면 여러분 농장에 깜둥이 새끼들로 가득 찰 겁니다. 쌉니다, 아주 싸요!”를 외치면서요. 
  

하지만 그림은 음울한 황혼녘을 배경으로 찌를 듯이 커다란, 그리고 분노에 찬 흑인 군상과, 총을 들었으되 왜소하고 볼품없는 백인 두 명을 보여줄 뿐입니다.
  
<상상해 보기2>
작가는 이런 우리가 왜 “부끄러워해야 하는가 백인이 부끄러워해야 하지 않는가”라고 항변합니다. 그리고 목화밭에서 일하는 흑인들의 뒷모습을 보여주면서, 노예제도에 저항해 싸웠던 지도자들도 위대하지만, 또한 “목화솜처럼 하얀 모자를 손으로 누르고 있는 저 이름 모를 노예는 위대하지 않느냐”고 묻습니다. “위대하다는 것은 여러 모습을 띠고 있으며” “나날의 삶 속에서 영원함을 깨닫고, 진리를 느끼는 것 또한 위대한 것”이라고 쓰고 있어요.

작가는 어린 시절 “할아버지들이 알았던 것을 나도 알고 싶었다”고 진술하면서, 참을성 있게 기다리면 말없이 먼 곳을 바라보곤 하던 “할아버지 모자에 왜 구멍이 났는지” 대답이 들릴 거라고 말합니다.<다음호에 계속>
<김환영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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