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와 변덕’
‘변화와 변덕’
  • 뉴스서천
  • 승인 2004.01.16 00:00
  • 호수 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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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의 형편에 따라 ‘아침형’이니 ‘저녁형’이니 하면서 뜨고 지는 해를 보기 위해 전국산하 여기 저기가 분주했다고 한다. 2004년이라는 새로운 시간 맞이에 다들 높은 의미를 두었던 것이다. 게다가 이러한 구복(求福)활동 말고도 축복(祝福)의 새해인사를 통해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보다 바람직한 상태로의 발전을 바라고 있다.
이는 단지 연말연시에 나타나는 모습으로만 생각해 보기엔 다소 남다른 주제일 듯 싶어진다. 분명히 나와 우리는 언제나 발전이니 성장이니 하면서 개선과 향상과 같은 변화를 소망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이렇듯 분주한 변화노력들은 왜 실패하고 갑자기 변질되며 그럴 경우, 나와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궁금해진다.
흔히 사물의 형상이나 성질 등이 달라지는 것을 변화(變化)라 칭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양적인 것과 질적인 것, 주관적인 것과 객관적인 것 등등 매우 다양한 모습으로써 만들어 질 수 있다. 그것도 행위주체자의 상황과 의욕, 형편과 처지에 따라 각기 다르게 말이다.
특히 행위주체자의 역량과 책임감에 따라 좁게는 개인으로부터 가정과 이웃, 크게는 국가와 인류에 이르기까지 그 구체적인 범위와 내용들이 결정되어지며 여기에서의 ‘역량과 책임’이란 이랬다저랬다 잘 변하는 성질, 즉 변덕(變德)의 크기에 따라 확정될 것 싶다. 동시에 능동성과 수동성 여부를 판가름할 실현가능성 여부와도 직결되면서 말이다. 그래서 ‘修身齊家後에 治國平天下’라고 하였던가?
아무튼 새로움에 대한 변화추구란 행위자의 변덕여하에 따라 애기(愛己)든지 애타(愛他)든지간의 모습으로 드러날 것 같다. 물론 촉박한 환경적응이 필요하다면 급변(急變)이라는 표현도 있을 수 있겠지만 이것 역시도 본질을 왜곡한 것이라면 분명코 이는 변화를 가장한 변덕과 변명으로써 그 어떠한 가치나 의미 없이 오히려 추잡스러운 모습으로 노출될 듯도 하다.
곧바로 해(양력)가 아닌 달(음력)의 변화모습에 다시금 기대해야 하는 설이 다가온다. 이때에도 불과 보름전에 했던 새로운 각오를 요란스럽게 다시금 되풀이해야 옳은가? 아니면 체질개선에 대한 지혜로운 선택완성을 위해 나 스스로를 점검해 봄이 합당한 일인가? 특히 이런 생각은 지역형편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총선이 다가 왔다고 하기에 더욱 더 짙어진다.
그렇다! 진정한 변화를 원하려면 손쉬운 변덕은 부리지 말아야 할 것이다. 더욱이 변화에 대한 진정한 희망이 살아있다면 이랬다저랬다 하는 변덕스러움은 과감히 던져 버려야 할 것이다. 동시에 옆에서 꼬드기는 유혹도 철저히 경계해야 할 것이다. 원래 독버섯은 화려하다고 하지 않는가? 그래서 올해는 변화와 변덕을 구별하기 시작한 현명한 나와 우리로 당당히 서 있고 싶다.
<우송정보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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