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대 보기 (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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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집국 기자
  • 승인 2004.02.13 00:00
  • 호수 2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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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아침, 잠에서 깨보니 엄마는 식탁에 벌써 김밥을 길게 쌓아놓고 있었습니다.
“오늘 너희들 가면서 먹을 거야. 엄마가 보온병에 물도 넣어줄 테니까 체하지 않게 먹고.”
날 보지 않고 말하는 걸 보니 엄마 마음을 알 것도 같습니다.
“엄마 오늘 출근 안 해?”
“너희들 버스 타는 거 보고 출근할거야. 좀 늦는다고 전화해놨어.”
“아빤?”
“지금 몇 신데? 벌써 가셨지. 저기 텔레비전 위에 종이 있지. 그거 아빠가 너희들한테 편지 써놓고 간 거니까 형 깨워서 같이 읽어봐.”
난 하얀 봉투를 들고 아직까지 누워있는 형에게로 갔습니다.
“일어나.”
“왜? 아직 버스 시간 멀었잖아.”
그날 이후, 형은 가끔씩 화해를 시도했었는데 내가 마음을 풀지 않자 이젠 오히려 나에게 더 화를 내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이거 읽어보래.”
“뭔데? 너나 읽어봐라. 이 형님은 아무 것도 보고 싶지 않다.”
“아빠 편지야. 또 알어? 계획을 취소했으니 그냥 집에서 쉬어라 그러셨을지?”
“설마?”
그러면서도 형은 어느새 이불을 차고 일어나 내 옆으로 다가왔습니다.
“안 본다며?”
“이게? 또 까불어? 빨리 봉투 안 열어?”
우리가 한가닥 희망을 갖고 펼쳐든 종이엔 이렇게 적혀있었습니다.
“영수야, 철수야.
아빠가 일찍 출근하느라 너희들 떠나는 걸 못보고 간다.
대신 엄마가 배웅해 주실 거야.
한 달 뒤에 건강하고 달라진 모습으로 만나자.”
그리고 글 아래엔 할머니네 집 찾아가는 길이 그림과 함께 자세히 설명되어 있었습니다.
“휴∼”
우린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엄마가 준비해주신 할머니 스웨터와 건강식품을 손에 들고 버스에 오르니 정말 떠난다는 실감이 났습니다. 엄마는 버스 안에까지 들어와서 짐을 올려주고 안전벨트 매는 것까지 확인한 다음 우리들 손을 한번씩 만져주었습니다.
“잘 지내다 와. 엄마 보고 싶어도 참고.”
“엄마…”
버스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하자 엄마는 서둘러 차에서 내리셨습니다.
창 밖에 서서 손을 흔드는 엄마를 보니 갑자기 눈이 뿌옇게 변하면서 주르륵 눈물이 흘러내립니다.
“울지마. 그럼 엄마 마음 아프잖아.”
형 목소리도 젖어있었습니다.
<계속 designtimesp=19684>

<함께읽는동화 designtimesp=196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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