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대 보기 (10회)
키 대 보기 (10회)
  • 편집국 기자
  • 승인 2004.02.20 00:00
  • 호수 2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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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가 고속도로에 접어들 때까지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앉아있었습니다.
형은 가방 속에서 만화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고, 창 쪽에 앉은 나는 창 밖 풍경을 오랫동안 바라보았습니다.
“너 돈 얼마 가져왔냐?”
여전히 머리는 만화책을 향해있으면서 형은 나에게 물었습니다.
“알잖아. 엄마가 주신거. 만원.”
“아이참, 그거 말고. 숨겨놨던거 안 가져왔어?”
“내가 숨겨 논 돈이 어딨냐?”
“큰일이네. 아무리 시골이래도 PC방은 있을텐데… 한 달 동안 몇 번 못가겠다.”
“형, 엄마가 PC방 가지말라고 했잖아.”
“알어, 알어. 너 여기까지 나와서 또 잔소리냐? 엄마처럼.”
좀전에 엄마랑 헤어질 때 서운해하던 형의 목소리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형이 일부러 저렇게 태연한 척 한다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만화 보는 속도가 무지 빠른 형인데 아까부터 같은 페이지만 계속 보고 있다는 걸 알았거든요.
차는 막히는지 속도가 아주 느렸습니다.
한참을 거북이처럼 가는데 이젠 아예 차가 서버렸습니다. 그리고 갓길로 경찰차가 빠르게 지나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사고가 났나?”
“큰 사고는 아니어야 할텐데.”
사람들이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어느새 사람들은 창으로 얼굴을 디밀고 밖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형은 거의 창 유리에 얼굴을 붙이고서 밖을 살폈습니다.
교통 경찰의 안내로 사고 현장을 벗어나는데, 큰 트럭이 길 한가운데 벌렁 드러누워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 차는 생선을 실어 나르는 차였는지 도로엔 얼음 덩어리와 아직도 살아 움직이는 물고기들이 여기저기 흩어져있었습니다.
아저씨 두 분이 고속도로에 누워 버둥대는 물고기들을 손으로 한 마리씩 주워올리고 있었습니다. 고속도로 한 가운데 누워서 살려고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던 물고기의 모습이 사고현장을 지난 뒤 한참 후에까지 계속 떠올랐습니다.
버스는 도착 예정 시간인 5시가 훌쩍 넘어 6시가 가까워 올 때에야 비로소 시골의 낯선 터미널에 우리를 내려놓았습니다.
형은 아침에 아빠가 그려준 약도를 꺼내 한참을 들여다보더니
“가자!”하고 내 손을 잡았습니다.
약간 어색했지만 어두워오는 낯선 공간에서 형 손은 아빠 손만큼이나 크게 느껴졌습니다.
<계속 designtimesp=19723>

<함께읽는동화 designtimesp=19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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