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쯔구바 대학으로 갑니다
일본 쯔구바 대학으로 갑니다
  • 뉴스서천
  • 승인 2004.02.27 00:00
  • 호수 2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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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3월부터 일본 쯔구바 대학 객원 연구원으로 1년 동안 머무르게 되었다.
서천이라는 보금자리를 떠나 일본이라는 낯선 땅에서 생활을 해야한다는 걱정도 있지만 서천의 역사를 좀더 심도 있게 연구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뿌듯하다.
사실 그 동안 서천의 역사를 연구하면서 일본어를 몰라 일제강점기 사료를 접하면 뒤로 미루어 놓기 일쑤였다.
언젠가 일본어를 공부하면 그때 연구할 것이라며 뒤로 미룬 것이 마침내 가족과 떨어져 살아야 하는 비운을 맞이한 것이다.
순수하게 일본어만 공부하기 위해서 일본에 가는 것은 아니다. 현재 연구하고 있는 향토사 교육을 일본에서는 어떻게 실시하고 있는가를 살펴보기 위해서 떠나는 것이다.
향토의 역사를 왜 일본에서는 중요하게 여기고 있으며 이를 어떻게 연구하여 가르치고 있는 가를 연구하기 위해서 일본에 가는 것이다.
서천이라는 자치단체가 어떻게 형성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으며 그들은 어떤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며 살아 왔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향토사라고 한다면 아직까지 우리나라 자치단체들은 향토사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한 상태인데 일본은 향토사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이미 자치단체별로 지역의 역사관을 설립하여 교육할 정도로 향토의 역사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에 일본에서의 향토사 교육에 대한 연구와 자치단체의 향토의 인식에 대하여 연구하기 위해서 떠나게 되었다.
사실 서천에는 일본의 역사가 많이 남아 있다. 이를 연구하기 위해서도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때마다 일본어는 나를 늘 고민스럽게 만들었다.
첫째, 백제 부흥운동시기의 백강구 전투, 기벌포, 주류성이 동북아시아의 패권과 깊은 관련성을 갖고 있는데 여기에 일본이 등장하고 있다.
당시 일본에 대한 연구가 삼국시대 서천의 역사를 제대로 구명할 수 있는 원천이다. 이에 대한 논문들이 대부분 일본어로 되어 있어 일본어를 모르고는 아무런 사실을 찾아 낼 수 없는 것이다.
일본인 쓰다가 주장하는 주류성과 관련한 길산천변의 중요성 역시 다른 사람의 주장을 통해서 알뿐 스스로 알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 짧은 기간이지만 열심히 일본어를 공부해서 우리 지역과 관련된 자료들을 발굴하고 연구할 것이다.
둘째, 임진왜란 당시 일본인은 전공을 세우기 위해서 조선 사람들의 귀나 코를 베어 갔다. 그에 관한 기록으로 한산 지방에서 코를 200개 베었다는 것이다.
어떻게 해서 그 기록이 남아 있으며 남은 자료를 통하여 새로운 사실을 발견할 것은 없는지 알 수 없는 것이다.
그 자료를 살펴본다고 해도 사료를 제대로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기 때문에 늘 2차 사료에 의존해야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또한 한산의 문헌서원이전 사우인 효정사가 이때 불타버렸다고 하는데 일본 어느 군대가 어느 길을 통하여 공격하였는지 궁금할 뿐이다.
물론 국내 나와 있는 연구서도 있지만 이제 1차 사료를 보고 싶은 욕심이 생긴 것이다. 1년이라는 세월이 이런 욕심을 채워주지 못한다 하더라도 최선의 노력을 두고두고 할 것이다.
셋째, 일본 제국주의가 한반도를 점령하여 식민지 통치시기 생산된 자료에 대한 해석이 불가능했다. 가장 먼저 1937년 발행된 『발전하는 장항』역시 일본어로 되어 있어 짧은 일본어로는 해석이 불가능하여 장항공고 안승구 일본어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번역을 하였다.
사실 번역된 것도 시대에 맞게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본인이 일본어를 알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자 수박 겉 핥기에 불과하였다.
특히 장항은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진 지역으로 대부분의 자료들이 일본어로 되어 있어 연구에 답답함이 있어 고민스러웠던 것이다.
또한 장항 관련 신문기사 역시 일본어로 된 것들이 있다.
또한 1923년 서천수리조합 관련 자료들이 모두 일본어로 남아 있다.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 석사학위 논문으로 정승진이 쓴 서천수리조합 연구의 참고 문헌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그때 그와 함께 자료들을 복사해 놓았는데 지금까지 손도 못 대고 있다.
서천수리조합 관련 자료들이 해석되고 연구 될 때 서천의 역사는 많은 것을 찾게 될 것이다.
더구나 요즈음 문제가 되고 있는 친일파 연구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당시 서천수리조합과 관련된 분야에 근무한 사람들은 대부분 친일파에 가까운 인물들이다.
특히 서천수리조합장이나 평의회 의원을 지낸 사람들의 행적이 밝혀지면 전국적인 기준에서는 친일행적이 미미할지 모르지만 서천에서의 친일 행적은 엄청나게 큰 것이다.
그동안 서천의 역사를 연구하기 위해서 동분서주했지만 가르치는 일과 일상 생활에 쫓겨 깊이 있는 공부를 못하였는데 이번 기회를 통하여 망중한을 즐기며 미래의 서천을 구상하는 계기로 삼을 것이다.
일본으로 떠나기 전 역사기행을 사랑하는 독자 여러분들에게인사를 드리고자 한다.
독자 여러분의 후원에 열심히 공부하고 돌아올 것이다.
일본에 머물면서도 서천의 변화와 개혁을 위하여 보고들은 바를 알리도록 노력할 것이다.
감사합니다.

<역사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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