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들이 시들고 있다
우리 아이들이 시들고 있다
  • 뉴스서천
  • 승인 2004.04.16 00:00
  • 호수 2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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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스한 봄볕이 유별난 요즘이다. 아이들과 교실 안에서 딱딱한 책을 들고 수업한다는 것이 미안할 만큼 봄날이 참 좋다.
내 마음이 이미 창문너머 들판으로 나가 있는데, 아이들은 오죽하랴! 봄나들이 나가 들판에 누워 독서를 하자고 아이들의 마음을 떠보았다. 얼마나 좋은가! 막힌 교실을 나가 푸릇한 봄내음을 느끼면서 독서를 한다는 것이. 아이들의 반응은 무덤덤 하다. 귀찮다고 한다.
허허! 이런 녀석들을 보았나. 저희들이 나가자고 졸라도 선생이 안 된다고 해야 하는 것이 내 상식에선 정상인데, 오히려 거꾸로 되어 버렸으니 참. 괜히 나만 멋쩍어 진 꼴이다.
얼마 전 토요일 수업시간에 있었던 일이다. 대자연이 모두 꿈틀거리며 새 생명을 움트는데, 우리 아이들은 그렇지가 않은가 보다. 또 다른 생태계의 파괴라는 생각이 든다. 무엇이 우리 아이들의 생태계를 파괴하는 것인가.
아이들은 가정과 학교라는 공간에서 성장을 한다. 정상적인 생태라면 지난 밤 엄마 품에서 푹 숙면을 취하고, 든든한 아침을 먹고, 여유 있는 발걸음으로 학교 길을 나선다. 학교에선 여러 가지 체험과 놀이를 하며 사회에 적응하기 위한 연습을 한다. 그리고 적당한 시간이 되면, 어미 품으로 다시 돌아가 자신의 체험을 돌아보고 내일의 또 다른 체험을 위해 재충전을 한다.
누구나 다 알고 있고,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생태 순환이다. 정상적인 생태계에서는 어느 누구나 각자의 특성에 맞는 삶의 형태를 찾아가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생태계가 파괴 될 때에는 그 결과는 정말 끔찍하기 그지없다. 이것은 구지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우리는 자연을 통해 수없이 보아왔다.
또 그것을 바로 잡기 위해서는 엄청난 시간과 노력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도 뼈저리게 느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현실은 아이들의 생태를 학교와 가정이 손을 맞잡고 파괴하려 들고 있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입시 위주의 교육정책과 그릇된 부모의 욕심이 아이들을 시들게 하고 있다. 학교에선 아이들에게 입시 노예가 되라고 무자비한 채찍을 내려친다. 집에선 학교 가서 늦게 오면 늦게 올수록 좋다고 아이들을 자꾸만 밖으로 내몰고 있다.
도대체 우리 아이들은 어디에 가서 무슨 자양분을 먹고 내일을 위한 재충전을 해야 하는가. 아이들은 숨을 쉬고 싶어한다. 나 또한 아이들의 생기 넘치는 숨소리를 듣고 싶다. 아마 어미들의 진정한 마음은 훨씬 더 그러할 것이다.
그 마음을 어찌 모르랴! 학벌위주의 사회가 우리의 부모마저 노예로 삼으려 하는 비참한 현실에서 마음이 있어도 그 마음을 드러내지 못하는 어미들의 마음을.
정화가 필요하다. 이미 우리 아이들의 생태는 수 십여 년에 걸쳐 심각하게 오염되고 말았다. 그 책임을 져야 할 것들은 오염의 원인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정화를 한답시고 엉뚱한 독을 다시 풀어내고 있다.
이미 썩어버린 강에 푸른 물감을 칠해놓고, 이제 푸른 강이 되었다고 하면 우리가 믿을 줄 아는 모양이다. 어림없는 짓이다. 더 이상 한 치 앞도 못 보는 것들에게 우리 아이들의 생태를 맡겨서는 안 된다.
우리 스스로의 정화가 필요하다. 우리의 자연에서 보았듯이, 쉬운 일은 아니다. 단시일에 될 일도 아니다. 당장 재생의 기미가 보이지 않더라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움트는 생명에 대한 굳은 신념을 품은 꾸준한 정화의 노력이 필요하다.
꿈을 꾼다. 햇살 따스한 날, 아이들과 들판에 기대어 자연의 숨소리에 귀 기울이며 시를 읊조리고 살아있는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는 날을. 부디 아이들이 나의 손을 잡아끌어 열린 세상으로 나가자고 때 쓸 그 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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