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일환의 낱말여행 (51) / 야인(野人)
■ 박일환의 낱말여행 (51) / 야인(野人)
  • 박일환 시인
  • 승인 2023.06.29 08:46
  • 호수 11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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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인’이라 불리던 여진족
박일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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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인이라고 하면 주먹왕 김두한을 내세운 드라마 <야인시대>부터 떠올릴 사람이 많겠다. 국어사전에서 야인(野人)을 찾으면 여러 가지 뜻이 나온다. 일반적으로는 시골에 사는 사람이나 교양과 예절을 모르는 사람을 가리키지만, 때로는 정치나 관직을 떠나 은거하는 사람을 뜻하기도 한다. 그래서 흔히 정계에서 은퇴하고 야인으로 돌아갔다라는 식의 표현을 사용한다. 그런데 조선 시대에 야인이라고 하면 대개 여진족을 뜻했다. 야인에 대한 표준국어대사전의 네 번째 풀이는 이렇게 되어 있다.

야인(野人): 4. <역사> 조선 시대에, 압록강과 두만강 유역에 거주하던 여진족.

우리 영토 가까이에 살며 노략질을 일삼던 무리로 흔히 왜인과 여진족인 야인을 꼽는다. 그중에서도 야인을 골칫거리로 여기던 세종은 김종서 등을 파견해 함경도 북방의 여진족을 몰아내고 경원, 경흥, 부령, 온성, 종성, 회령에 방어 진지를 구축했는데, 이게 바로 육진(六鎭)이다.

우리 입장에서는 국경을 넓히고 국방을 튼튼히 한 셈이지만, 그 지역에 살던 여진족으로서는 졸지에 터전을 잃어버린 신세가 됐다고도 할 수 있다. 쫓겨난 여진족들은 만주의 파저강(婆猪江) 부근에 모여 살며 세력을 키운 다음 호시탐탐 다시 두만강을 건너올 기회를 엿보았다. 그 당시 다수의 여진족은 건주 지역에 살았고, 그래서 그들을 건주여진(建州女眞)이라는 말로 부른다. 그들과 합류하지 않은 일부 여진족은 육진 근처에 터를 잡고 살았다.

2021년에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 아신전>이 방영됐는데, 극이 시작되면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는 자막이 먼저 나온다. 다음은 그중 일부 구절이다.

심상치 않은 파저위의 움직임에 위기감을 느낀 조선의 장수들은 그들을 정탐하고 견제하기 위해 또 다른 여진족들을 이용했다. 조선에 귀화해 살아오던 여진족들로 성저야인이라 불리던 자들이었다. 백 년이 넘은 오랜 시간 동안 조선 땅에 그들은 여진족도 조선인도 아닌 멸시받는 천한 대상이었다.”

위 구절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드라마의 시대 배경은 육진이 설치되고 난 다음 100년 이상 지난 시점이다. ‘성저야인이라 불리던 여진족들이 그때까지 육진 부근에 머물러 살고 있었다는 얘기다. 조선왕조실록에 성저야인(城底野人)이라는 말이 여러 차례 나온다. 성 아래에 사는 야인 즉 여진인이라는 뜻인데, 아쉽게도 이 낱말은 국어사전에 오르지 못했다. 실록 번역자가 이 용어에 육진(六鎭)을 개척한 후 6진의 성 안에는 우리나라 군인이 주둔하고, 성 밖에는 야인이 거주하여 우리나라의 보호를 받으면서 적정을 정탐하여 보고하였는데, 이를 성저야인이라 함.’이라고 한다는 내용의 주를 달았다. 그들이 두만강을 건너가지 않은 건 그동안 일궈온 삶의 터전을 포기하기 힘들었기 때문일 것으로 보인다. 성저야인들로부터 다른 여진족들에 대한 정보를 얻는 대신 조선 정부는 그들의 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제공하는 공생관계였다.

파저강 주변에 살던 건주여진이 보기에 성저야인들은 어떤 존재였을까? 조선과 내통하며 자신들에 대한 정보를 팔아넘기고 있으니 한마디로 배신자 집단이었을 것이다. 회색분자 취급을 받던 성저야인들이 겪어야 했을 고충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지난 글에서 함경도 북쪽에 모여 살던 재가승이 여진족 후예일 거라고 했는데, 주류 여진족으로부터 배척받던 성저야인들이 육진 근처에 눌러앉아 살면서 나중에 재가승이라는 명칭을 얻게 된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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