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시장터 / 신목, 남당리 은행나무를 찾아서
■ 모시장터 / 신목, 남당리 은행나무를 찾아서
  • 김윤수 칼럼위원
  • 승인 2023.08.17 05:39
  • 호수 116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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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수 칼럼위원
김윤수 칼럼위원

충남산림자원연구소에서 발표한 충남의 신목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서천군의 신목은 비인면 남당리 은행나무였다. 부여군 성흥산성의 느티나무와 부여군 홍산면 관아의 객사에 있는 은행나무는 많이 알려져서 자주 찾아보았지만, 남당리 은행나무는 본 적이 없어서 그 자태가 궁금했다. 내비게이션에 남당리 행복체험마을로 길 안내를 찍고 찾아 갔다. 마을은 산으로 둘러싸여 깊숙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마을에 들어서자 멀리 우뚝 선 은행나무가 보인다.

근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내렸더니, 임벽당 김씨의 시비들이 세워져 있었다. 임벽당 김씨는 조선 중종 때 여성 시인으로 신사임당, 허난설헌과 더불어 조선시대 3대 여성 시인이라고 한다. 기묘사화 때 고향인 비인면으로 돌아와 은거한 유여주의 아내로, 의성 김씨이다. 시집 <임벽당집>증별’ ‘빈녀음의 작품이 알려져 있다고 한다.

이렇게 유명한 여류 시인을 모르고 있었으니, 나의 무지도 한몫 했지만 지역의 문화 예술 관광 분야에서 서천군이 좀 더 힘을 써야 되는 것 아니냐고 항변해본다. 주변 환경을 좀 더 깨끗하고 아름답게 가꾸어서 홍보를 한다면 서천군을 알리는 효과 뿐만 아니라 남당리 마을도 활력이 넘치는 농촌 마을이 될 것이니 말이다. 마을의 오랜 역사가 더 많이 있을 것 같은데, 안내 표지판이나 지도도 없다.

은행나무 가까이로 가보니 돌로 만든 제단이 있고, 보호수를 안내하는 표지석이 놓여 있다. 보호수로 지정받은 일자가 1982년이고 수령이 500년이라고 쓰여 있으니 현재 550년은 되었을 나무이다. 나무 둘레는 8.4m이고 높이가 25m라고 한다. 나무의 밑둥은 크게 잘려 나갔고 시멘트로 보수한 곳도 있다. 웅장한 가지가 여러 갈래로 뻗어 나갔지만 가지가 잘린 곳이 있어 안타까웠고, 끄트머리에 살아남은 가지와 잎도 크기에 비하면 엉성한 것 같다. 전체적인 모양과 건강 상태가 부여군 홍산면의 건재하고 있는 750년 된 은행나무와 사뭇 대조가 되어 아쉽고 속상했다. 나는 나무에 가만히 손을 얹고 나무의 기운을 느껴본다. 손에 전달되는 나무의 뜨거운 기운은 나만의 느낌일까. 자꾸만 울고 싶은 심정을 누를 수가 없었다.

남당리 은행나무를 보면서 생각한다. 선조들이 우리 문화와 마을의 역사 속에서 나무와 어떻게 더불어 살아왔는지, 보호수의 역사적·학술적 가치를 마을의 역사와 더불어 정리해서 보존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긴 세월 누적된, 역사적 가치가 있는 보호수에 대해서 지속적인 관리 유지가 필요하다. '보호수 정밀진단'을 시행하여 병해충 방제, 영양공급, 수형 조절을 하고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내부 부식과 균열 등도 조사하여 집중 관리를 해야 한다. 또한 서천군 내 마을의 역사와 함께 하는 300년이 넘는 고목을 조사하여 지정 보호수로 지정하여 향후 관리를 잘 해야 한다.

백과 사전에 의하면, ()에서 신목은 하늘과 땅, 그리고 하느님과 인간이 만나는 거룩한 곳이므로 우주의 중심인 우주목(宇宙木)의 의미를 가진다. 단군신화에 의하면 환웅(桓雄)은 태백산 꼭대기에 있는 나무 신단수(神壇樹) 밑에 강림하였다 하니, 고조선 이래 신목 신앙은 무와 더불어 오늘날까지 내려온다. 신목 신앙은 산악신앙 및 천신강림(天神降臨) 신앙과 연결되어 있다. 마을이나 산 속에 위치한 신목은 매년 정월 초나 봄 가을에 정기적으로 마을에서 제를 지내거나 유명한 무당을 초빙하여 굿을 하기도 한다. 무당은 영력을 얻기 위해 제물을 바치며 굿을 하고 마을 주민들은 마을의 안녕과 질서를 위해 제를 지낸다. 그래서 신목의 주위에 돌무더기를 쌓아놓거나 돌로 제단을 마련하여두기도 한다.

내가 본 가장 아름답고 신령스러운 신목은 지금은 무인도가 된, 신안군 대태이도의 정상에 있는 동백나무였다. 신령이 있다면 분명 그 나무에 강림했을 것이다. 아름다움과 위용을 갖춘 그 나무는 나를 압도했지만, 잠시도 그 나무에서 벗어나기가 싫었다. 그 나무는 나에게 너무나 많은 위로와 편안함을 선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신목이, 고목이, 나무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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