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성환 명창 중고제 판소리 ‘적벽가’ 관람기
■ 박성환 명창 중고제 판소리 ‘적벽가’ 관람기
  • 허정균 기자
  • 승인 2023.09.06 17: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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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열린 중고제 판소리 ‘적벽가’ 완창공연 열기
서천에서 열리는 ‘중고제 소리축제’로 이어지기를...
▲2일 서울 대치동 한국문화의집 코우스에서 열린 박성환 명창의 중고제 적벽가 완창공연 모습
▲2일 서울 대치동 한국문화의집 코우스에서 열린 박성환 명창의 중고제 적벽가 완창공연 모습

지난 2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있는 한국문화의집 코우스에서 중고제 소리의 맥을 잇고 있는 박성환 명창의 판소리 적벽가 완창공연이 있었다. 서천 출신의 국창 이동백의 소리를 잇고 있는 박성환 명창은 현재 공주에 있는 ()한국중고제판소리진흥원 대표로 주로 대전, 충청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판소리에서 많은 사람들은 동편제, 서편제에 익숙한 반면 중고제의 의미는 아직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이러한 가운데 서울 한복판에서 박성환 명창의 중고제 판소리 완창 공연이 열린 것이다.

150석의 객석이 다 찬 가운데 공연이 시작됐다. 중고제판소리문화진흥회 회장을 맡아 중고제 소리의 보전과 알리기에 노력하고 있는 정병헌 전 숙명여대 교수가 나와 중고제 판소리 적벽가가 오늘까지 전해지게 된 내력을 설명했다.

명창 유성준으로부터 동편제 판소리 적벽가를 배운 정광수가 삼고초려 대목이 있는 중고제 적벽가를 배우기 위해 이동백 명창을 찾았고 뒤늦게 박성환 명창이 정광수를 찾아 이동백 명창의 적벽가를 이어받게 되었는데 이때 정광수 명창의 연세가 90이었다. 정광수 명창이 타계할 때까지 3년 동안 이동백의 중고제 적벽가를 배웠으나 뒷부분 일부는 완전치 못해 스승의 타계 이후 유성기판에 남아 있는 이동백 명창의 소리를 박성환 명창의 각고의 노력으로 마침내 복원해 냈다는 것이다.
유성기판이 낡고 닳아 처음에는 무슨 소린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반복해 듣다 보니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어요.” 이날 박성환 명창의 말이다.

정병헌 회장은 중고제에 대해서도 알기 쉽게 설명했다.

판소리에도 중고품이 있냐고 하는데 중고제는 고제를 이어받은 것입니다. 고제(古制)는 판소리 초창기 경기·충청 지역에서 성행했던 옛날 판소리입니다. 그러면 중고제(中古制) 다음은 신제(新制)겠지요? 신제가 바로 동편제, 서편제입니다.”

삼고초려 대목이 없는 동편제 적벽가를 민적벽가라고도 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러나 동편제 송만갑으로부터 판소리를 배운 박봉술이 삼고초려 대목을 일부 삽입해 넣은 박봉술제 적벽가도 있다고 한다.

한복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광대와 고수가 등장했다. 서용석 고수는 팔마고수전국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고 지금은 중고제 전문 고수로 활동하고 있다고 정 회장이 소개했다.

일고수이명창이란 말이 있는데 고수가 먼저 나와 북다스름을 한 후 명창이 나와 소리판을 열게 된다는 뜻이라 한다. 이날은 함께 무대에 나와 인사를 했다. 보통 본격적인 판소리를 시작하기 전에 소리꾼은 단가를 하나 불러 목을 풀게 되는데 이날 박성환 명창은 백발가를 부르는 것으로 시작했다.

백발가는 요즘 장항 서천군문화예술창작공간(미곡창고)에서 매주 목요일에 열리고 있는 중고제소리한마당에서 박성환 명창이 서천 군민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소리 가운데 하나이다.

천하대세 분구필합이요 합구필분이 성탄 선생의 만고 학론이라..... 와룡 선생 높은 이름 수경선생 말씀이요 서원직의 천거로다.”

어려운 한문 문장이 들어간 사설을 아니리로 한참을 이어가더니 광대는 갑자기 관객들을 향해, “뭔 말인지 알아듣겄소? 나도 잘 몰라...”
관람석에서 폭소가 터졌다.

공명 선생을 세 번째 찾아간 유비 3형제는 그가 낮잠을 자고 있자 깨우지 않고 밖에서 한참을 기다리는데 성미가 급한 장비가 참지 못하고 불싸질러버리겠다고 나서자 유비가 애절하고도 간곡한 중머리 장단으로 현제(賢弟), 현제여, 현제는 그리 말라하며 말리는 부분이 나온다. 이 부분이 삼고초려 대목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다.

마침내 공명을 상면하게 되고 이어 공명 출사-박망파 전투-강릉으로 행군-자룡 아두를 구함-공명 동오 방문-동남풍 비는 대목-자룡 활쏘는 대목-공명 제장 분발-조조 대연 배설 장면으로 이어지는데 적벽대전을 눈 앞에 두고 조조의 군사들이 고향에 두고 온 노부모와 처자식을 생각하며 신세 한탄을 하는 장면들이 나온다. “어떤 군사는~”하면서 각각의 처지를 말하며 서럽게 울며 한참을 이어가는데 바로 유명한 군사설움대목이다.

진수의 정사 <삼국지>는 조조가 세운 위나라를 정통으로 보고 역사를 서술했지만 원명 교체기에 나온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는 한나라 황제 후손인 유비의 촉나라를 정통으로 보고 유비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서술한다. 판소리 적벽가는 삼국지연의의 내용을 따랐다. 소설 삼국지연의는 조선조에 와서 모화사상을 부추겼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는데 판소리 적벽가에서는 삼국지연의에는 나오지 않는 군사설움대목이 들어있다. 이는 민중들의 반전사상을 사실적으로 드러내며 이러한 논란을 뛰어넘어 민중을 이야기 전개의 중심에 가져다 놓는다. 또한 조조가 패전하여 쫓기다 군사를 점고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여기에서도 일반 군사들의 구체적 이름이 거명되고 있다. 이 또한 삼국지연의에는 나오지 않는 부분이다.
여기까지 오는 데 꼬박 두 시간이 흘렀다. 소리꾼 한 사람이 달랑 북 하나 잡고 있는 고수의 도움을 받아 관객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며 영화 적벽대전보다 더 흥미진진하게, 영화보다 더 긴 시간을 이어가고 있다. 판소리의 매력은 여기에 있다 할 것이다. 군사설움대목이 끝나자 소리꾼은 관객들의 편의를 위해 10분간의 휴식 시간을 주었다.

이후는 조조가 패배하여 공명이 지휘하는 유비의 군사들에게 쫓기는 내용이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해학과 재담이 관객들의 폭소를 끌어내지만 긴박감이 감돌며 이야기 속으로 몰입시킨다. 군사의 옷과 바꿔입은 조조는 허겁지겁 도망치며 이렇게 외친다. “나를 조조라 하는 놈이 참조조다

이처럼 쫓기는 와중에 유명한 새타령이 등장한다. 적벽대전에서 죽은 조조의 군사들이 원조(怨鳥)가 되어 날아드는 것이다. 새타령에는 모두 24종의 새가 각각 고유의 특성과 이야기를 가지고 나온다. 소리꾼은 잠시 소리를 멈추고 이동백의 새타령이 유투브에 있으니 꼭 감상해보시라고 안내했다.

화용도에서 조조와 맞딱뜨린 관우는 옛정에 호소하는 조조를 차마 죽이지 못하고 결국 살려 보내준다. 공명은 군율대로 관우를 심판하여 참수하려 한다.
“<아니리>그때의 현덕과 출전 제장들이 모두 공명전에 엎드려 운장을 살려달라고 비는구나. 공명도 조조가 죽을 운이 아님을 알고 운장을 화용도로 보냈으니 어찌 운장을 베이리오,... 그러고 끝나~”
신재효가 정리한 적벽가 사설은 관우의 충의를 한바탕 설하며 끝을 맺는다. 그러나 중고제 적벽가에서는 싱겁기 그지 없다. 이렇다 저렇다 평가는 유보한 채 무려 꼬박 3시간을 달려온 소리판이 끝이 났다. 관중석에서 폭소와 박수갈채가 동시에 터져나왔다.

오는 10월에 2회 중고제 소리축제가 서천에서 열린다. 수도권에 있는 많은 판소리 애호가들이 중고제를 찾아 서천을 방문하기를 바란다.
<허정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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