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령탑 건립, 추모공원 조성 등 추진하겠다”
“위령탑 건립, 추모공원 조성 등 추진하겠다”
  • 허정균 기자
  • 승인 2023.09.07 16:44
  • 호수 1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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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판교장터 미군폭격 추모위령제 열려


복대리 판교장터 미군폭격 희생자 추모제5일 판교면 현암리 판교장터에서 열렸다.
복대리판교장터희생자추모회(회장 정완희, 이하 추모회)가 주최하고 서천군청, 판교면, 판교중학교 등이 후원한 이날 행사에는 김성관 부군수, 나소열 전 충남 부지사, 전익현·신영호 도의원, 최명규 서천문화원장, 김영완 판교면장 등 기관 단체장, 주민 등 200여명이 참석했다.

이날 행사는 부여조촌추양리두레풍물팀의 식전 공연과 함께 시작됐다. 이어 판교중학교 학생들로 구성된 현악 앙상블의 공연과 박성환 명창의 추모의 소리가 이어지며 숙연한 분위기 속에서 추모제가 진행됐다.

신영희 추모회 부회장은 경과 보고를 통해 1950910일 미국 전투기의 판교장터 무차별 기총사격으로 100여명이 사상한 복대리 판교장터 미군폭격 사건은 1910년 진실화해위원회로부터 진실 규명 판정을 받았으며 2021년 추진위원들의 자부담으로 처음 추모제를 지냈으며 지난해 8서천군6.25전쟁민간인희생자위령사업 등에 관한 조례가 제정되어 앞으로 지난해부터 군으로부터 보조금을 받아 추모제를 치를 수 있게 되었다고 밝혔다.

이어 현종갑 추모회 이사의 복대리 판교장터 그 여름의 끝시낭송과 추모제례 및 헌화 순서가 이어졌다.

정완희 추모회 회장은 추모사에서 판교 미군 폭격 사건은 제2의 노근리 사건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이제야 군의 지원을 얻어 추모제를 지낼 수 있게 됐다고 말하고 앞으로 위렵탑을 세우고 추모공원을 조성하는 등 해야 할 일을 차근차근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김성관 부군수는 추모사를 통해 두번 다시 일어나서는 안될 사건이라며 과거의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유족들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을 전한다고 말했다. 이어 나소열 전 충남부지사와 전익현 도의원, 신영호 도의원의 추모사가 이어졌다.

73년 전인 1950910일 오전 11시 무스탕이라 불리던 F51 미군기 2대가 나타나 장터 상공을 선회하더니 장터에 모여든 흰옷 입은 주민들을 향해 기총소사를 가해왔다. 순간 장터는 아수라장이 됐고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1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날 현암리 장터로 몰려든 주민들은 인민군이 미군의 폭격에 대비 장을 열지 못하게 하자 판교국민학교 뒤 판교리와 복대리 가실마을로 옮겨가 임시장터를 열었다.

당시 많은 목격자들이 있었지만 이 엄청난 사건의 진상은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채 2010년 진실화해위원회의 진실 규명이 있기까지 역사의 뒤안길로 묻혀왔다.

당시 서천지역은 북한의 주공라인인 경부축선으로부터 서쪽으로 치우쳐 있었기에 미군이나 한국군이 방어전투를 실행하지 않았으며, 해병대를 비롯한 지역경찰이 북한군 제6사단 13연대에 맞서는 정도로 상시 주둔한 대규모 인민군 부대는 없었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그러나 미 제5공군의 F-51F-80은 도로상에 움직이는 차량과 병력의 파괴에 중요한 역할을 했고 북한군의 병력과 보급품이 촌락지역에 은닉됐다는 판단으로 인근 촌락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판교면 폭격사건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미군 문서로는 제18전폭단 소속 제67전폭대대의 1950910일자 임무보고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해당문서에 따르면 당일 1055분경 F-51 2대가 이륙하여 임무를 완수하고 1250분경에 착륙한 것으로 보고됐다. 이 시간 중 판교 임시시장에서 기총사격을 하며 머문 시간은 1130분부터 45분까지 15분간으로 판교리 동쪽으로 이동하던 소속 비행기 두 대가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장면을 목격, 기총소사를 한 것으로 기록돼 대부분의 희생자 유족의 진술과 일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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