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일환의 낱말여행 (62) / 고도리와 회자수(劊子手)
■ 박일환의 낱말여행 (62) / 고도리와 회자수(劊子手)
  • 박일환 시인
  • 승인 2023.09.21 11:28
  • 호수 1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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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을 집행하는 사람
박일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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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리라고 하면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게 고스톱이다. 그런데 국어사전에서 고도리를 찾으면 다른 뜻을 지닌 동음이의어가 몇 개 더 나온다. 고등어의 새끼를 고도리라고 한다는 건 그동안 여기저기 소개되어 아는 이들이 제법 있다. 그런데 의외의 뜻을 지닌 낱말 하나가 더 실려 있다.

고도리: <역사> 조선 시대에, 포도청에서 죄인의 목을 졸라 죽이는 일을 맡아 하던 사람.

이와 함께 포도청에서 죄인의 목을 졸라 죽이던 일을 뜻하는 자리개미라는 낯선 낱말도 표제어에 있다. 이 말이 어디서 왔을까 해서 다시 찾아보니 자리개라는 게 있다. 자리개는 옭아 매거나 묶는 데 쓰는, 짚으로 만든 굵은 줄이라는 뜻을 가진 낱말이다. 심훈의 소설 상록수한 길이나 되는 볏단을 자리개로 큼직하게 묶어서라는 구절이 나오기는 하지만, 지금은 그런 낱말이 있다는 걸 아는 이가 거의 없는 형편이다. 자리개미라는 말은 필시 이 자리개로부터 파생되어 나왔을 것이다. 목을 졸라 죽이려면 굵은 줄이 필요했을 테고, 그때 사용된 줄을 자리개라고 한 데서 자리개미라는 말이 나왔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렇다면 고도리라는 말은 또 어디서 비롯했을까? 아쉽게도 정확한 어원이나 유래를 밝힌 자료를 찾지 못했다. 다만 고도리 역시 자리개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하는 추론을 해볼 수는 있겠다. 1936년에 조선어학회가 조선어 표준말 사정을 할 때의 자료를 보면 자리개를 고류승(藁類繩)이라는 한자로 나타냈다. ()는 짚이라는 뜻을 지닌 한자이므로, 자리개의 뜻을 한자를 빌어 짚 같은 종류로 엮은 밧줄이라고 해설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도리는 옛날 사내 이름을 삼돌이니 차돌이니 하는 식으로 부를 때 뒤에 붙이던 돌이와 통하는 게 아닐까? () 즉 짚으로 엮은 밧줄로 사람 목을 졸라 죽이던 사람을 고돌이>고도리라고 한 게 아닐까 하는 게 나의 추론이다. 확실한 근거가 있다고 하기는 힘든 나만의 어설픈 추론일 뿐이니 다른 이들이 더 연구해서 정확한 유래를 밝혀주면 좋겠다.

죄인의 목을 졸라 죽이는 교수형을 옛날에는 교형(絞刑)이라 했고, 목을 베어 죽이는 참수형은 참형(斬刑)이라 했다. 참형을 맡아 하던 사람을 망나니라고 한다는 건 다들 아는 사실이다. 망나니에 해당하는 다른 낱말이 국어사전에 하나 더 있다.

회자수(劊子手): <역사> 군영(軍營)에서 사형을 집행하던 사람.

줄여서 회수(劊手) 혹은 회자(劊子)라고도 한다. 뜻풀이에서는 그냥 사형을 집행하던 사람이라고만 했으나 목을 베는 참형을 담당하던 사람을 말한다. 회자수는 중국에서 건너온 용어로, 본래 군사 중에서 선발해서 참형을 집행하던 사람을 뜻했으나 나중에는 망나니와 같은 의미로 사용하기도 했다. 천주교 박해 때 회자수에게 참형을 당했다는 기록이 많다.

망나니가 참형을 집행할 때 죄인의 가족들에게 뇌물을 요구했다는 기록도 있다. 뇌물을 주지 않으면 한 번에 목을 자르지 않고 칼을 여러 차례 내리쳐서 고통스럽게 죽도록 했다고 한다. 이런 사례 말고도 저잣거리를 휩쓸고 다니며 공짜 술이나 음식을 요구했다고도 하는데, 그런 이면에는 망나니들이 그런 행위를 할 수밖에 없었을 거라는 동정론도 있다. 망나니는 누구나 기피하는 인물이라 다른 일거리를 찾을 수 없었으며, 그러다 보니 사형 집행이 없을 때는 특별한 수입원이 없어 먹고 살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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