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 생 – 3 7
육 생 – 3 7
  • 정장길
  • 승인 2023.10.03 20:19
  • 호수 116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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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해주 한인들의 강제 이주 이야기
정 장 길 / 서천읍 사곡리 주민
정 장 길 / 서천읍 사곡리 주민

소설 형식의 이 글은 사할린에서 태어나 까자흐스탄에서 살다가 20103월 영주 귀국하여 서천 군민으로 살고 있는 정장길씨가 쓴 글입니다. 이 글을 통해 1937년 스탈린 통치하의 소련이 당시 연해주에 살고 있던 한인 17만여 명을 까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지로 강제 이주시킨 상황을 잘 알 수 있습니다.<편집자>

 

 

 

 

1937927일은 강제 이주당한 구소련 극동의 한인들을 태운 역사상 첫 기차가 떠난 날이다. 스탈린의 눈에는 한민족이 6으로 보였던가.

아이(아니) 된다! 아이(아니) 준다--

조용해져가는 분위기 속에서 문득 남자들의 거친 욕 소리와 함께 어떤 여자의 절망에 찬 소리가 쟁쟁히 울려났다. 바로 앞 차량 쪽에서 들려온 울부짖음이었다. 기차를 따라 촘촘히 늘어선 경찰들의 주목이 일시에 그쪽으로 몰아졌다. 개들도 그 곳으로 대가리를 돌리고 -짖어댔다.

여성은 가슴이 터지도록 울부짖었다. 두 경찰이 달려들어 상스러운 욕을 퍼부으면서 그녀의 목덜미와 어깻죽지를 왈칵 잡아당겼다. 노친은 땅에 히뜩 나자빠졌다.

아이 된다-! 이 새끼들아--.”

암흑의 비운이 재소련 한인의 머리 위에 내리드리운 1937. 전소련(볼쉐비키)공산당 중앙위원회 기관지인 쁘라우다423일 호는 극동의 한인사회를 일본 스파이 온상으로 선포했다. 외국기관이 소련에 한인…… 스파이를 밀파하며극동에 거주하는 한인 …… 중에서…… 스파이를 고용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장차 한인들을 강제추방할 밑거름이었다.

최초 한인들이 러시아 극동에 발을 들여놓은 때는 문서상 1861년으로 알려져 있다. 그 뒤 18641월 예순 다섯 명으로 이루어진 열 네 가정이 연해주 총독의 허락을 받고, 조선 조정의 눈을 피해 비밀리에 국경을 넘어와서 노브고로츠꼬예 초소로부터 15킬로미터 떨어진 허허벌판에 자리를 잡고 말뚝을 박았다. 새로 태어난 마을 이름을 지진해라고 달았다. 한민족이 러시아 이민사의 첫 페이지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텅 빈 연해주 땅을 개척하려고 골치를 앓고 있던 정부는 한인들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생활기반까지 닦아주었다. 그러나 그 후 육진(함경도) 지역이 혹심한 흉년에 휩쓸려 이주자들이 밀물같이 밀고 들어오자 러시아는 이주를 제한했다. 황인종이 러시아 사람보다 많아질 수 있다는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던 것이다. 하여 한인들이 국경지역에 거주하는 것을 꺼리던 짜리(차르, 제정러시아 황제)정부는 누런 민족을 접경지역에서 멀리 떨어진 내지로 깊이 몰아넣어 정착시켰다.

한인들의 운명을 제멋대로 쥐락펴락하던 소비에트 정권이 실시한 정책 중 몇 가지 전횡을 열거해보자.

19216월 일본군에 쫓겨 극동 스바보드니(자유) 시에 넘어온 만주의 대한독립군을 박멸 해치웠다.
192211월 극동에서 일제침략자들과 싸웠던 48개의 고려사람’ (재 극동한인들은 자신을 이렇게 불렀다) 빨치산 부대들을 모두 해산했다.
소련 인민위원 소비에트(당시 정부의 명칭)는 극동에서 일본군이 철수한 후, 일본의 신경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1924610일 재소련한인연맹을 금지해 치워버렸다.

1927818일 전 연맹 (볼쉐비키) 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은 한인들을 국경지대에서 멀리 떨어진 내부지역으로 이주시킬 대책을 취하도록 했다. 그 대책은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인하여 성립되지 못했다.

1930225일 스탈린은 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회의를 소집하여 한인 이주문제를 되씹었으나 이번에도 실패했다. 이유는 여전히 경제 재정 토대의 부재였다.

정치국은 1932710일 또다시 한인문제를 들고 나와, 극동 내에서 안전한지역으로 강제 이주시키라는 비밀지령을 반복했으나, 그것도 보람이 없었다. 역시 안전 지역이란 한반도와 소련간 접경지대로부터 깊숙이 들어가 있는 내지 땅을 의미했던 것이다.

그러던 차 스탈린은 죄없는 한인들을 일본과 소련 간 관계의 제물(祭物)로 삼아 국경을 지킬 간책을 폈다.

오생’(‘五牲’)이라는 말이 있다. 제물(祭物)로 쓰이는 사슴, 고라니, 본노루, 이리, 토끼 다섯 가지 짐승을 가리키는 말이다. 스탈린의 눈에는 한인이 제 육생(六牲)으로 보였던가.

결국, 1937821일에는 소련 인민위원 소비에트와 (볼쉐비키)공산당 중앙위원회가 일본간첩의 극동 침투를 근절할 목적이라는 명분을 조작하여, 인간증오, 민족증오, 인종증오의 정신에 젖은 1428-326 сс호라는 결정을 채택해 극비밀로 표기한 특수 서류철 속에 묻어두고, 한인 스파이 추방이라는 대폭적인 강도계획을 본격으로 짜는 데 이르렀다.

소련 인민위원 쏘웨트 및 전 연맹 (볼쉐비키)공산당 중앙위원회

결정 제1428-326 cc
1937821

극동 크라이 국경지대에서의 한인주민 이주에 관하여

소련 인민위원 쏘웨트 및 전 연맹 (볼쉐비키)공산당 중앙위원회는 아래와 같이 결정한다 :
일본간첩의 극동 침투를 근절할 목적으로 다음과 같은 조치를 취한다:

1. 극동 크라이 국경지대……의 한인주민들을 남부 카자흐스탄 주, 아랄해와 발하쉬 호수 지역, 그리고 우즈베크공화국으로 이주시킬 것을…… 제의한다.
2. 이주하는 한인들에게 가장집물, 작업용구와 가축을 운반해가도록 허락한다.
3. 이주자가 남긴 동산과 부동산 그리고 농작물의 대가를 그들에게 보상한다.
4. 이주하는 한인들이 외국으로 출국할 것을 원할 경우 간편한 월경절차를 허용하며 방해하지 않는다.
5. 소련 인민내무위원부는 이주와 관련하여 한인 측으로부터 도출 가능한 폭행과 소동을 대비할 조치를 취한다.
6. ……
10. 한인들이 떠나는 지역에서 국경수비를 강화하기 위하여 국경수비군을 3천 명 증가한다
11. ……

소련인민위원전연맹(볼쉐비키)공산당 소비에트 위원장
중앙위원회 서기 V. 몰로토프 I. 스탈린

(전통적으로 총서기의 직함을 겸손하게 보이려고 그저 서기라고 썼던 것이다. 번역이 되지 않는 크라이란 말은 나 한국의 를 상기시키는 정치행정적 술어이지만, ‘크라이내에는 자치제(자치주 등)가 속해있으므로 , 와는 다르다.)

결정 제1428-326 cc호는 야수적인 엉터리수작에 불과했다.
첫째로, 기실 스파이 없는 국가가 세상에 어디 있으랴. 그렇다고 온 민족에게 간첩의 딱지를 붙여, 18만의 주민을 몽땅 수천 리 하늘 끝인 낯설은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에 헌 짐짝같이 버리고 마는 짓이야 맑은 정신으로는 저지를 수나 있는 일인가.
둘째, 실은, 1항에 거슬리게, 접경지역 뿐만 아닌 기타 모든 지역의 거주민까지 합쳐 온 극동의 한인들을 수십 년 살아온 정든 고장에서 모조리 강제추방해버렸던 것이다.

셋째, 아무런 죄도 없이 불시에 쫓겨난 사람들은 준비도 하지 못한 채, 다 여물어가는 곡식을 거둘 여유도 없이, 살림살이와 가축을버리고 홀몸만 빠져나가게 되었다. 운반해갈 수 있는 재물의 한도가 1인당 40킬로그램으로 제한되었었으니, 살림살이는커녕 옷가지와 이부자리, 그리고 끌려가는 동안 도중에 먹을 몇 킬로의 양식밖에 가져갈 수 없었다.
넷째, 3항에 따른 대가로 보상이 전혀 시행되고 있지 않고 있던 상황에서 1941622일 히틀러의 독일군이 소련에 쳐들어왔으니, 대가는 전쟁의 불길 속에서 버리고 말았다.
다섯째, 한인이 진실로 외국으로, 즉 한국으로 자유롭게 나갈 수 있도록 허락했다면 왜 국경수비군을 3천 명 증가시켰겠는가?
여섯째, 있을 수 있는 소동을 대비할 조치를 취하라는 지령은 내렸어도, 피추방자가 편안히 갈 수 있도록 배려하라는 말은 보태지 않았다. 그리하여 틈마다 황소바람이 윙윙- ’하는 화물열차에 남녀노소를 집짐승같이 실어, 벌써 사나운 눈보라가 불어치는 끝없는 시베리아와 카자흐스탄 광야를 횡단하는 철도를 달포가 넘도록 덜컹덜컹 달리게 했으니, 야수 아닌 사람의 가죽을 뒤집어쓰고서야 어떻게 그 끔찍한 짓을 감행했으랴.
일곱째, 이주민 이송은 무질서했다. 기차들이 정확히 지적된 목적지도, 번호도 없이 달리기가 일쑤였다. 차량 부족으로 인하여 한집식솔이 각각 다른 방향으로 달리는 열차에 나뉘어 실려오다가, 넓디넓은 중앙아시아의 아득한 지평선 위에서 생이별을 하고 마는 수가 빈번했다. 그러고는 이동 자유가 없는 그 철의 장막속에 갇혀서 서로의 주소도 모르는 채 살아갔다.

극동의 가을. 하바롭스크. 아침부터 먹장 같은 구름장이 떠돌고 굵은 빗방울도 이따금 떨어졌다. 바람까지 불어 한인들의 가슴 속도 이날따라 쓸쓸하기 짝이 없었다. 드디어 하늘에서 이주라는 짤막한 청천벽력이 떨어졌던 것이다.
이주자 임시집합소인 어느 한 유흥업소 건물. 끌려온 수백 명이 왁자지껄하게 우글거렸다. 파헤쳐놓은 벌집 같았다. 숨이 막힐 정도였다.

에구, 이러다간 우리 딸으 깔아뭉개 죽이겠소.”

땅에 내려놓은 짐은 비에 젖고 있었다. 소총을 든 국경수비대 군인과 군견을 몰고온 경찰들이 마당을 빙 둘러싸고 서있었다.
허연 궤짝을 등에 진 채 벽에 기대어 쪼그리고 앉은 웨라 할머니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그녀는 그 무슨 주문을 외우는 건지, 겨우 들렸다.

끌려가니 극열지옥 이곳이라. 에구, 에구, 살려주소.”

1864년 초겨울에 아버지가 진 지게의 다리를 잡고, 눈보라에 하얗게 싸여 딸딸 떨며 가슴까지 푹푹 빠지는 눈길에 휘우뚱거리면서 시베리아의 지진해로 따라가던 그 소녀였다.
어둠이 내려앉자, 종일토록 굶고 있던 사람들은 또다시 사투리 하소연을 풀어놓았다.
까자끼쓰딴에는 왼통 갈밭이구, 멧돼지하구 승냬이(승냥이) 무리가 욱실욱실 바라다닌답데. 마을에 들어와서 양으 잡아먹구, 닭이두 물어가구.”

먹을 게 없게 되문 사람두, 자라이(성인)두 잡아먹는답데.”

갈밭에서는 범두 따웅- 하구.”

에구에구 기 뚝차다 야!”

너무 덥어서 사람이 못 살 데이까 우리르 끌구 간다오. 가서 썩어지라구 그러는 게지비.”

개새끼들이. 에구-, --.”

끌려가니 에구, 살려주소. 나무 아미타불 나무 관세음보살!”

엄마, 집으루 가.”

쪼꼼만 기다레라. 이제 불술기(불수레, 기차)에 앉아서 칙칙푹푹 하메 갈 게다. 너는 불술기르 아직두 못 타봤재이야? 씽씽 달리는 게 신이 나구 재미있다더라.”

엄마, 싫으타, 집으루 가자. 좁쌀밥으 먹구 싶다. 우리 검둥개는 마샤 아주마이 집에서 울구 있을 게다. --…….”

어린이는 볼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때묻은 주먹으로 문댔다.
차츰 조용해졌다. 주위는 울음소리, 한숨소리 뿐, 말소리는 거의 없었다.
문뜩 저쪽에서 자동차가 불을 비치면서 어둠 속을 헤치며 달려왔다. 피추방자들을 열차역으로 끌고갈 무장경찰들이 한 패 뛰어내렸다. 뒤따라 트럭이 수십 대 들이밀었다.
총을 든 경찰들이 욱실거리는 난리판에 천 여 명이 붐비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경찰들이 뛰어다니면서 꽥꽥 소리를 지르며 욕을 퍼부으면서 독촉했다. 미처 일어나지 못한 노인들을 발로 차기도 했다.

후루루, 후루루…….”

열차역에 도착한 김만은 주위를 한눈으로 둘러보았다. 그는 웨라 할머니의 주문에 마음이 끌리던 그 중년이었다. 역은 파헤쳐놓은 개미집 같았다. 애들의 아우성. 경찰의 호각 부는 소리, 욕소리, 고함, 개 짖는 소리……. 총 든 경찰들이 역전을 빙 둘러싸고 촘촘히 서있었다. 개 목걸이를 잡은 자도 많았다. 마당에는 담배꽁초가 허옇게 널려있었고 종이조각들이 바람에 흩날렸다.

자동차 위에선 한 젊은이가 땅에 서있는 경찰과 싸우고 있었다.

쌀이 다 젖어 썩어버리문 굶어 썩어지라구 그러오? 젖은 이불로 엉덩이는 어떻게 덮고 자란 말이오? 당시이(당신) 엉덩이만 아이 얼문 되는가 함 둥?”

자크로이 빠쓰치(아가리 닫아)!”

후루루들어가! 후루루

이거 받소, , 날래(빨리)…….”

-, 어째 미오?”

알렉싼드르, 싸샤.”

아 빨리 들어가오, 비키오.”

이거 좀 당기오.”

---.”

, 그거 어째 던지오? 어째 이러오?”

---

빨리 실어, 들어가! 빨리! 빨리! 빠알……

후루루. 후루루.”

건물 안에서는 직원들이 유리창에 들어붙어 호기심에 찬 시선으로 어둠 속을 내다보았다. 국내전쟁 시기에도 이렇게 붐빈 일은 없었다. 유명한 러시아 화가 레삔의 폼페이 화산참사 장면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극적인 난장판이었다.
창문도 없는 어두컴컴한 차량 안에 들어간 김만은 퀴퀴한 악취에 얼굴을 찡그렸다. 고린 땀내. 썩은 냄새. 짐승의 똥 냄새. 가축을 운반하는 화물열차였으니까.
집짐승의 마른 똥이 묻은 차량 안의 벽을 따라 까칠까칠한 널로 되는대로 두드려 맞춘 2층 침상이 한 줄로 쭉 서있었다. 똥이 말라붙은 차량 바닥의 한복판에는 드럼통 난로가 장치됐고 천정에는 초롱이 하나 달려 희미한 불빛이 하늘거렸다. 차량의 저쪽 끝부분은 판자로 대충 막혀있었다. 거기는 하나밖에 없는 남녀공용 화장실이었다.
김만이 탄 차량에는 스물 일곱 명이 들어찼다. 타기 전에 언뜻 세어봤는데 차량 수가 거의 쉰 대는 잘 될 상 싶었다.
새벽 네 시가 훨씬 지났다. 차츰 진정해진 김만의 머리 속엔 아버지의 묘가 자꾸 떠올라 마음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나는 불효한 새끼야. 옛날부터 우리 고레사람이는 죽은 사람으 찾지 못하문 그 사람으 이빨으 파묻구, 머리카락 무덤두 만들구, 손톱이나 발톱으 공동뫼지에 묻었는데. 나는 제 애비 뼤다귀두 팽개치구 떠난다. 아들 구실으 못할 새끼!에구, 쯧쯧.”

폭행과 잔인성으로 이름난 연산군은 왕좌를 올라타자마자, 즉위 이전의 스승을 맷돌로 갈아죽였다. 희생자의 부인은 시신이 없으니 그의 피를 치마에 적시어 가져다가 치마무덤이라는 허총(虛塚)을 쌓았다 한다.
기실, 문서보관소 자료를 보면, 피추방자들이 부모의 유골을 모셔가려고 무덤을 파헤친다는 보고가 지방에서 상부기관들에 입수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나 새끼는 있는 무덤두 버리구. 저 경찰 새끼들이는 우리 민족 풍습두 모르구, 죽은 애비 뼤다귀두 파 가져가지 못하게 하이까디. 야만 새끼들이 언제 개명으 하구 사람 구실으 하겠는 둥. -

밖에서 쿵- 소리가 나더니 이번에는 여인의 울부짖음 소리가 거기에서 들려왔다. 김만은 문틈으로 밖을 내다보았다. 희끄무레한 궤짝이 땅에 놓여있었고, 그 위에 어떤 노친이 엎어져 양 손으로 끌어안고, 머리를 악착스레 흔들면서 버둥질을 쳤다. 김만은 주문을 외우던 낯익은 모습과 그 궤짝을 알아보았다. 경찰들이 궤를 차량에서 밖으로 내던졌던 것이다. 그녀의 풀어져내린 긴 백발과 치마가 어두컴컴한 창밖에서 바람에 휘날렸다.

김만은 주먹으로 문을 두드렸다.

에이! -! 이 새끼들아! --에이!”

경찰들은 반응이 없었다.

아이 된다! 이 새끼들아!”

두 경찰이 웨라 할머니에게 빼앗은 궤짝을 맞잡아 머리 위까지 버쩍 들었다가 쾅 내려뜨렸다. 궤는 박살이 나고 검은 흙과 함께 허연 종이에 싼 동그랗고 길쭉길쭉한 것들이 굴려져 나왔다.
경찰은 엎드려 주으려는 노친을 무릎으로 콱 차놓고, 땅에 깔린 물건을 차버렸다.
할머니는 또 일어나 굴러간 것을 주워 두 팔로 가슴에 싸안았다. 다른 경찰은 그것을 빼앗아 휙 팽개쳤다. 그것은 개 앞에 굴러갔다. 경찰견은 냄새를 맡아보고 물러서면서 으르렁거리며 짖었다. 세 경찰이 빼빼 여윈 노친의 두 팔과 양다리를 버쩍 들어 돌덩이처럼 차량 안으로 휙 던져버리고 문을 쾅 닫아 잠궈치웠다. 터진 코에서 흐르는 피가 백발을 물들였다.

뜨와유 마치, !”

경찰이 상욕을 내뱉었다.

후루루, 후루루, 후루루--.”

---

아이 된다! 이 새끼들아-! 아이 되---

-----

고동소리는 노친의 울부짖음을 삼켜버렸다. 기관차는 칙칙푹푹- 하면서 수증기를 토했다. 기차는 덜컹덜컹, 쾅쾅- 하면서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엄마-! 엄마---!”

그 궤짝에는 웨라를 낳다가 죽은 어머니의 유골이 들어있었던 것이다.
육생-37의 비극은 소련 공산당이라는 괴물과 잔인무쌍한 소련 정부라는 깡패가 약소민족을 대상으로 실시한 강도 행위였다. 그런 국가가 1세기도 채우지 못하고 역사의 뒤뜰에서 먼지가 되어 흩날려버리고 말았으니, 이는 정의와 인류역사의 당연한 판결이자, 전체주의 제도와 독재정체에 주는 교훈이리라.
소련 공산당과 정부의 결정, ‘인도주의적인 민족정책이라는 선전이 파렴치한 위선이요, 기만이었다는 것은 반박할 여지가 없다. 치 떨리는 그 강제이주가 미치광이의 기에 젖은 대강국적 전제정치의 산물이며, 결코 일본제국주의의 야수적 폭정에 뒤지지 않은 횡포라는 것도 변명할 수 없으리라. 일제의 한민족말살정책, 히틀러의 인종말살정책, 스탈린의 소수민족말살정책…… -! 일제와 독일파쑈제국과 소련제국주의가 다를 게 무엇인가.
노친의 애처로운 울음소리가 또 들려왔다. 복장을 뒤집히는 그 부르짖음은, 정든 보금자리를 빼앗기고 공포에 휩싸인 미지의 어둠 속으로 쫓겨가는 천 여 명의 가슴을 보이지 않는 칼로 가르고, 터져 나오는 울음과 합류하여 연해주의 밤하늘에 저 멀리 저주의 경보로 울려 퍼졌다. 비참한 원한의 울부짖음에 땅이 갈라지고 하늘이 째졌다!
육생이 아우성치던 1937년 가을밤. 역사에서 지울 수 없는 비극의 밤. 야수적인 정권체제는 스스로 망국의 어둠 속으로 사라져갔다.
육생-37기차에 실려.
------------칙칙푹푹
---뽀오--

▲까자흐스탄 우슈토베 역에서 마차로 실려와 내던져진 곳. 지금 우슈토베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이곳에는 1937년의 혹독한 겨울을 견디지 못한 이들의 추모비와 묘비가 세워져 있다. 편집자
▲까자흐스탄 우슈토베 역에서 마차로 실려와 내던져진 곳. 지금 우슈토베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이곳에는 1937년의 혹독한 겨울을 견디지 못한 이들의 추모비와 묘비가 세워져 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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