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일환의 낱말여행 (64) / 장변(場邊)
■ 박일환의 낱말여행 (64) / 장변(場邊)
  • 박일환 시인
  • 승인 2023.10.12 21:45
  • 호수 116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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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장날까지 닷새 동안의 이자
박일환 시인
박일환 시인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기간과 이자율은 다양했다. 매일 이자를 내는 걸 일수, 달마다 이자를 내는 걸 월수라고 한다는 거야 다들 아는 얘기다. 그렇다면 다음 낱말은 어떨까?

장변(場邊): 장에서 꾸는 돈의 이자. 한 장도막, 곧 닷새 동안의 이자를 얼마로 셈한다.

장이 서는 기간은 지역에 따라 삼일장, 오일장, 열흘장 등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오일장이 일반적이었다. 장변은 이번 장이 섰을 때 빌려서 다음 장이 설 때 갚는 걸 말하며, 닷새라는 기간을 둔다. 장의 옛말인 저자를 뜻하는 한자 시()를 써서 시변(市邊)이라는 말도 썼고, 장변리(場邊利)라고도 했다. 체계(遞計) 혹은 장체계(場遞計)라는 것도 있는데, 장변과 차이점이 있다면 원금의 일부와 이자를 함께 받았다. 이렇게 빌려주는 돈을 체곗돈이라고 한다.

장변의 이자율은 어느 정도였을까?


매월 6회씩 열리는 시일(市日)에서 시일(市日)까지에 1할 내지 2할의 고리(高利)를 지불한다. 심지어는 5할 내지 6할이라는 고리로 차금(借金)하는 자도 있다.(동아일보, 1935.2.6.)

장변(場邊)을 인정한 현행 이식(利息) 제한령이라는 제목으로 나온 기사의 한 대목이다. 지금은 거의 안 쓰는 이식(利息)은 이자를 뜻하는 말이다. 기사의 전체 내용에 따르면 당시에도 장변의 이자율이 너무 높아 법으로 제한하려 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법이 큰 효력을 발휘하기는 힘들었으며, 이자율은 빌려주는 사람 마음이라 제각각이었다.

예전에는 장변을 이용해 돈놀이를 하는 과부들이 있었던 모양이다.

식구만큼 돈도 퍽 나가겠지만 족보야말로 과부 장변을 얻어서라도 새로 장만해야 될 재산같았다.

이문구의 단편소설 이 풍진 세상에에 나오는 대목으로, ‘과부 장변이라는 말이 눈에 띈다. 일상 언어생활에서는 과부 딸라돈’, ‘과부 딸라 빚’, ‘과부 땡빚같은 말도 많이 사용했다.

과부 딸라 빚을 얻어서라도 남극으로 탈출하고 싶은 심정이다.(중도일보, 2016.8.25.)

급하다고 과부 딸라돈 빌리려는 바른정당과의 통합은 상호 괴멸을 부르는 자충수일 수도 있다.(브레이크뉴스, 2017.10.31.)

과부 땡빚을 당겨서라도샀어야 했다라는 자괴감마저 들었다.(매일경제, 2022.3.10.)

과부가 돈놀이를 할 수 있었던 건 돈이 많았기 때문이겠다. 그런 정황을 확인할 수 있는 속담으로 과부의 버선목에는 은이 가득하고 홀아비의 버선목에는 이가 가득하다라는 게 있다. 과부들이 알뜰하여 돈을 잘 모은다는 뜻을 담고 있는 속담이다. 그런가 하면 과부의 대 돈 오 푼 빚을 낸다라는 속담도 표준국어대사전에 실려 있다. ‘대돈변이라는 낱말이 별도로 표제어에 있으며, 돈 한 냥에 대하여 한 달에 한 돈씩 계산하는 변리를 뜻한다. 땡빚의 은 또 어디서 왔을까? 화투 노름에서 땡을 잡으면 배로 쳐주는 데서 왔다고 설명하는 이들이 있는데, 그럴 듯한 해석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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