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일환의 낱말여행 (65) / 수할치
■ 박일환의 낱말여행 (65) / 수할치
  • 박일환 시인
  • 승인 2023.10.20 06:47
  • 호수 116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몽골에서 건너온 말
박일환 시인
박일환 시인

이청준의 소설에 매잡이라는 작품이 있다. 매잡이는 매를 이용해 사냥하는 사람을 가리키며, 소설 속에 산골 마을에서 매잡이로 살아가는 곽돌이라는 인물이 나온다. 매사냥의 역사는 신라의 진평왕과 백제의 아신왕이 즐겨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로 오래됐다. 고려 충렬왕 때는 나라에서 응방(鷹坊)이라는 기구까지 설치했는데, 원나라가 공물로 매를 바칠 것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응방은 조선 시대에도 이어져 존속했으며, 고을마다 꽤 많은 매사냥꾼들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주 소수의 사람만 남아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흔히 원나라 간섭기라고 불리는 시기에 많은 말들이 원나라 즉 몽골에서 건너왔으며, 송골매나 보라매 같은 말도 마찬가지다. 그중에는 들어본 이가 거의 없을 만큼 낯선 말도 국어사전에 실려 있다.

수할치: 매를 부리면서 매사냥을 지휘하는 사람.

매사냥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매잡이 혹은 매사냥꾼이라는 말을 많이 쓰고, 매부리라는 말도 같은 뜻으로 쓰인다. 더러 매꾼이라고 하는 이들도 있으나 이 말은 국어사전에 전남 지역의 방언이라고 나온다. 한자어로는 응사(鷹師)라는 용어가 있는데, 매를 기르고 부리는 사람을 뜻하는 동시에 조선 시대에는 응방에 근무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벼슬 이름으로도 썼다. 응사에서 갈라져 나온 응사꾼도 국어사전 표제어에 있다.

수할치라는 말은 고유어인 매나 한자 응()과 아무런 접점도 보이지 않는데, 대체 어디서 온 말일까? 많은 이들이 짐작하듯이 몽골에서 건너온 말이다. 국어사전에 실린 낱말 중 뒤에 가 붙은 것들이 꽤 많다. 벼슬아치나 구실아치가 그렇고, 지금의 거의 사용하지 않는 조라치나 반빗아치 같은 낱말도 있다. 조라치를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으면 괄호 속에 詔羅赤▽라고 표기해 놓았다. 한자로는 이라고 표기했지만 읽을 때는 로 읽는다는 뜻이다.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을 뜻할 때 사용하던 몽골어인 셈이다.

조라치는 크게 세 가지 뜻을 지니고 있었다. 고려 시대에 대궐이나 관아를 지키던 장교, 왕실이나 절의 뜰을 쓸던 하인, 군대에서 나각(소라의 껍데기로 만든 옛 군악기)을 불던 병사를 모두 조라치라 불렀다. 마지막의 뜻으로 사용할 때는 취라치라고도 했으며, 표준국어대사전에는 괄호 속 표기를 吹螺chi’, 고려대한국어대사전은 ‘@吹螺赤라는 표기와 함께 중세 몽골어 조라치의 음역어라는 설명을 달았다. 표준국어대사전의 표기는 아무리 봐도 엉성하게 돼 있어 신뢰가 가지 않는다. 반빗아치는 반찬 만드는 일을 하던 여자 하인을 뜻하며, 지금의 부엌을 뜻하는 반빗간도 표제어로 올라 있다.

반면에 두 사전 모두 수할치에 따로 한자 표기를 넣지 않았는데, 그건 수할에 해당하는 한자가 없었거나 예전에는 한자로 표기했으나 어떤 한자를 사용했는지 확인하지 못해서 그랬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말샘>에는 수알치의 옛말이 슈왈였다는 내용이 나온다.

매사냥은 유네스코에서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했으며, 아시아 지역만이 아니라 유럽을 비롯한 60여 개 국가에서 스포츠처럼 즐기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1930년대의 조선총독부 자료에 따르면 매사냥 허가 발급자가 1,740명에 달할 정도로 성행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공기총의 보급 및 매의 천연기념물 지정 등으로 쇠퇴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대전시 무형문화재 제8호인 박용순 씨가 매사냥의 명맥이 끊길 것을 걱정해 한국전통매사냥보전회를 만들어 전수생들을 기르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