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바탕 살풀이춤, 저마다 하늘에 점 하나 찍는다”
“한바탕 살풀이춤, 저마다 하늘에 점 하나 찍는다”
  • 허정균 기자
  • 승인 2024.01.04 05:53
  • 호수 117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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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 광덕산 기슭의 농촌 마을로 귀촌해 생태주의자로 살고 있는 김해자 시인이 금강호의 가창오리를 보고 쓴 시 가창오리가 최근 간행된 김해자 시집 니들의 시간(창비시선 494)에 실려있어 소개합니다.
<
편집자>

▲금강호 가창오리 군무
▲금강호 가창오리 군무

가창(歌唱)오리
서천의 허정균 형께

 

바이칼호수 푸른 눈가에서 태어났다 태극무늬 두르고
먼 하늘 날아왔다 시베리아 몽골 지나 만리 길
날갯짓 소리 들으며 서로의 울음소리 들으며
날면서 합류하고 날수록 무리가 커졌다
맨몸으로 왔다 공중에 매달려 왔다
작아서 모였다 추울수록 날았다
떼 지어 춤추고
떼로 울면서,
가창오리는 야간조
노을빛 이고 밥 벌러 간다
어두워야 난다 배고파서 오른다
원이 춤춘다 공이 날아가고 물 폭탄이 쏟아진다
날개 파닥이는 자리마다 탱크 소리, 서로 상하지 않는다
부딪치지 않는다 춤꾼이자 소리꾼 가창오리는 노래가 춤이고
울음이 노래,
어두울 무렵 기지개를 켠다 외따로들 앉아 있던
가창오리들이 물 박차고 치솟는다 동시에 날아오른다
곤두박질치고 흩어졌다 다시 대열을 이룬다
시시각각 하늘에 새겨지는 검붉은 띠
펼쳤다 접고 갔다 돌아온다
산이 울렁거린다
강이 흔들린다.
기나긴 밤샘 작업이 끝나고
먼동이 트면 다시 솟구칠 게다
낱낱이 엎드려 낟알 주워 먹던 풀숲 사이
밤새 웅크렸던 날갯죽지 털며 한꺼번에 비상할
한바탕 살풀이춤, 저마다 하늘에 점 하나 찍을 게다
아침노을 물고 밥그릇에 수저 부딪는 오리들의 창가(唱歌)
허공을 두드려대는 북소리

 

지은이 김해자

김해자 시인
김해자 시인

1998년 내일을 여는 작가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무화과는 없다』 『축제 집에 가자』 『해자네 점집』 『해피랜드민중구술집 당신을 사랑합니다, 산문집 내가 만난 사람은 모 두 다 이상했다』 『위대한 일들이 지나가고 있습니다등이 있다. 만해문학상, 백석문학상, 전태일문학상, 이육사시문학상, 구 상문학상, 아름다운 작가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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