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항장 날의 추억
장항장 날의 추억
  • 뉴스서천 기자
  • 승인 2004.05.14 00:00
  • 호수 2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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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전골목 해장국집 앞마당에
가마솥이 걸리고 국밥 끓이는
장작불이 지펴지면서 장날은 시작된다.
장날은 자연스러운 축제
장인심도 후하다
머슴도 쉬는 날

간사지장으로 불리던 장항장날은 3일과 8일이다. 이 닷새간을 ‘한 파수??라고 한다. 옛날의 장항장날은 근동이 떠들썩했다.
시골 농가에서는 장거리 준비하느라 아이들까지 분주했고, 장항 읍내는 장꾼들로 왁자지껄하였다. 떡전 골목 해장국집 앞마당에 가마솥이 걸리고, 국밥을 끓이는 장작불이 지펴지면서 장날은 시작된다.
이른 아침, 짐자전거 종소리가 요란스럽게 울리며, 화천양조장 막걸리가 이 집 저 집 배달되고, 복남씨네 고깃간에는 시골에서 잡아온 검정돼지가 털도 덜 벗긴 채 벌겋게 걸려있고 푸줏간 앞 커다란 양은솥에는 시래기 선지국이 장꾼을 기다리고 있다.
싸전(쌀전)이 가장 먼저 열린다.
지난밤, 늦게까지 찧은 매가리간(방아간) 주인이 직접 소달구지에 쌀을 싣고 나오면 쌀장사들은 대들어 쇠꼬챙이로 쌀을 좀 꺼내어 그 상태를 보고 그날의 쌀금을 매긴다.
말강구 (말감고,  말질을 하고 되 밑으로 먹고사는 사람)들은 자기들 몰래 곡물 거래가 이루어지는지 눈을 부릅뜨고 감시하고 있다.
인근 여인숙에서 자고 일어난 장돌뱅이들은 해장술을 한 잔 걸치고, 콧노래를 흥얼대며 포장치고 좌판을 벌린다. 이른 아침이면 벌써 장꾼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장닭을 소쿠리에 넣어 오는 사람, 지푸라기로 유정란을 10개씩 엮어서 한 보따리씩 이고 오는 아낙네들,
도리깨, 바작, 갈퀴, 갈빗자루 등을 짊어지고 오는 노인들, 구럭에다 돼지새끼를 매고 오는 사람, 펄펄 뛰는 생선을 다라에 이고 가는 어부의 아내. 염소새끼를 몰고 가는 할아버지와 손자도 눈에 띈다. 장날이면 옥산에서 남전, 솔리 화천동을 거쳐 장 어귀까지 남부여대(남자는 지게에 지고 여자는 머리에 이고)장꾼들의 긴 행렬이 장관을 이룬다.
장 골목 입구에는 으레 거간꾼들이 진을 치고 있다. 장꾼들은 거간꾼들을 피해 가려 하지만, 용케 알고 짐 보따리를 잡아챈다. 넘겨라, 안된다. 서로 승강이가 벌어지면서 장판은 무르익기 시작한다. 삶의 끈끈한 현장이다.
「남들이 장에 가면 볼 일이 없어도 두엄 지고라도 장에 간다」는 이곳의 속담도 있듯이, 장날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일손을 놓고, 장에 간다. 장날은 자연스럽게 쉬는 날이며 축제의 날이다.
머슴들도 장날이면 마음이 뒤숭숭하다. 남들 모두 장에 가는데 혼자 들에 나가 호락질 하자니 일이 손에 안잡힌다.
인심 좋은 주인은 국밥값이라도 주어서 장에 보내곤 했다. 장에 가서는 흥정할 게 많다.
아이들 고무신도 사야 되고, 성냥도 사야 되고, 시아버지 제사 거리도 장만해야 한다.
하지만, 사돈댁 만나 시집간 딸 소식 듣는 일도 빼놓을 수 없다. 친구들 만나 술 한잔 주거니 받거니 세상얘기 나누며 농사 정보도 듣는다.
보리밥에 푸성귀로 배를 채우던 그 시절, 장터에서 기름진 국밥 한 그릇 맛있게 먹으면, 농사일에 시달린 몸이 확 풀어진다. 장 인심은 후하다.
돈 한푼 없어도 술청으로 끌려 들어가면, 배불리 먹는다.
장항 읍내가 사람들로 들썩들썩하던 장항 장날의 풍경은 이제 추억 속에 정경이 되고 말았나.
여건도 시대도 많이 변했다. 시골 장은 농민들에게 거래의 장, 휴식의 장, 사교의 장, 놀이의 장으로서 중요성을 잃은 건 사실이다.
그러나 장항장은 다시 살아 날 수 있다. 반드시 살려야 한다.
군산, 장항, 도선장을 연결하는 다리를 놓는 일이 모든 일보다 선행되어야 한다.
다리가 놓아지는 즉시, 장항장은 옛날보다 몇 배의 큰 장으로 거듭 날 것이다. 40만 군산 시민이 신선한 서천 어메니티 농수산물을 사기 위하여 장항 장으로 몰려들 것이다.
장항장이 살아야, 장항이 살고, 서천 군이 산다. 지역 경제는 장날을 축(hub)으로 해서 움직인다.

나우열 / 칼럼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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