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우리 아이들을 두 번 죽이는 일이에요
그것은 우리 아이들을 두 번 죽이는 일이에요
  • 뉴스서천 기자
  • 승인 2004.05.27 00:00
  • 호수 2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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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수 / 칼럼위원
얼마 전, 자원봉사센터에서 모 고등학교, 모 여고 학생 몇 명을 만난 적이 있다. 여기서 뭘 하냐고 물었더니, 며칠 후에 있을 청소년 자원봉사단 발대식 준비를 위해서 모여 있다고들 하였다.
누가 시켜서도, 어떤 필요에 의해서도 아닌 자신들 스스로 모여 뭔가를 고민하는 모습들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아! 이런 것이 바로 우리 아이들의 참 모습이구나!’
0교시와 야간 자율학습, 그리고 입시를 위한 획일적 보충수업으로 5월 한 달 내내 충남 교육계가 떠들썩하였다. 유난히 흐린 날도 ,햇살 뜨거운 더위도 많았던 5월. 다행히도 좋은 결과로 마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결과가 편안히 앉아서 얻은 결과는 결코 아니었다. 전교조 충남지부장 선생님의 단식 16일이라는 목숨을 건 투쟁, 그리고 많은 선생님들의 눈물겨운 노력이라는 희생의 대가인 것이다. 이제서야 아이들이 숨을 쉴 수 있는 작은 틈이나마 열린 셈이다.
그러나 아직 긴장을 놓아서는 안 된다.


큰 틀이 마련되었다고 하여도, 숨구멍이 완전히 탁 트일 날은 아직도 멀기만 하다.
일부에서 어긋난 교육열을 내세워 힘겹게 얻어낸 값진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움직임이 바로 그 이유이다. 그들은 아이들을 위해서라는 명분을 내세워 진실을 외면하려 한다.
무엇이 아이들을 위한다는 것인지. 한 마디로 낡아빠진 교육 틀-학교를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준비 과정이라 여기는, 그렇기 때문에 입시 교육에만 열중하고, 그것만이 최고의 교육이라는 입장-에서 허덕이고 있는 불쌍한 사람들의 똥오줌 못 가리는 이야기이다.


물론 아직도 우리 현실은 입시라는 굴레가 아이들의 목을 죄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인간이 만든 하나의 제도일 뿐, 절대적인 현실은 아니다.
그런데 이것이 마치 절대적인 진리인 양 신봉하는 그 꼴들을 보면 참으로 가관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은 말한다. “그럼 아이들은 언제 공부하나요?” 한심한 질문이다. 나는 또 반문한다. “그럼 아이들은 학교 수업시간에 뭐하나요?” 우스운 문답이다. 아이들은 결코 공부하는 기계가 아니다. 또한, 좋은 대학, 좋은 학과만이 아이들의 살길이 아니란 말이다.


아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자.
그 속에는 우리가 모르는 새로운 세상이 가득하다. 우리가 입으로 숨을 쉰다고 아이들도 입으로 숨을 쉬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아이들이 코로 숨을 쉬고 싶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다. 입으로 한들, 코로 한들 어디 다른 심장이 뛰겠는가.


자원봉사센터에서 만난 아이들과 여담을 나누던 중, 한 녀석이 물었다. “선생님, 그럼 이제 진짜로 야자 안 해요?” 농담을 반 섞어 대답하였다. “당연하지. 이제 그거 하면 불법인데. 만약에 학교에서 야자 한다고 하면, 경찰에 고발해버려.” 아이들이 피식 웃고 만다. 반신반의하는 아이들의 눈빛이 나를 씁쓸하게 했다.


힘든 싸움 끝에 트인 숨구멍이다. 입시가 죽인 아이들, 이제는 살려보자고 터놓은 숨인데 또 다시 약삭빠른 편법으로 아이들을 죽여서는 안 된다. 더 이상 눈앞의 현실에 아이들을 적응시키려 해서는 안 된다. 큰 틀에서 생각해야 할 것이다. 모 방송의 코미디처럼 우리 아이들을 두 번 죽이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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