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대보기(마지막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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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서천 기자
  • 승인 2004.06.03 00:00
  • 호수 2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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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정아 / 그림·이호남
“잘 가라, 내 새끼들…….”
할머니는 형과 내 손을 잡으며 눈물을 글썽거리십니다.
“할머니, 꼭 오셔야 해요. 이번 모시만 하고 꼭 오셔야 해요!”
형은 할머니 팔을 흔들며 말했습니다.
“오냐, 오냐. 내 새끼들. 잘 들 있어야 헌다. 엄마 말씀 잘 듣고, 우애 있게 그렇게 있어야 헌다. 이 할미 저 베 다 짜면 갈꺼니께. 맛있는 거 사 가지고 갈꺼니께.”
할머니는 자꾸 눈물을 훔치십니다. 
“어머니, 아무 것도 사오지 마세요. 그냥 몸만 오세요. 기다리고 있을 게요. 몇 시에 도착하신다고 전화주시면 저희가 역으로 나갈게요. 지난번처럼 전철 잘못 타서 고생하지 마시고요.”
“알었다. 운전 조심혀서 가고, 애들 싸운다고 너무 걱정하지 말어라. 다 그렇게 크는거니께.
알었지? 아범한티도 그렇게 말혀주고.”
“네, 어머니. 그럼 가보겠습니다.”
엄마가 차 시동을 겁니다. 이젠 정말 헤어질 시간입니다.
“명석이헌티 안 가봐도 될랑가?”
할머니가 갑자기 생각난 듯 말씀하십니다.
“어? 온다고 했는데? 형, 명석이 형 아침에 온다고 했잖아?”
“그러게. 왜 안 오지?”
형은 명석이 형네 집 쪽으로 시선을 돌립니다.
그때 헐레벌떡 뛰어오는 명석이 형이 아주 작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명석이 형이다! 어? 뭘 들고 오는데?”
“뭐지?”
“명석이가 서운혀서 뭐 하나 가져오나 보네. 돈도 없을 건디, 할머니가 다리 아퍼서 약값이 많이 들어간다고 허든디…….”
잠시 후 명석이 형 손에 들린 것을 보고 우리는 깜짝 놀랐습니다.
우리가 간다는 걸 알고 밤새워 만들었다는 방패연이었던 것입니다.
형이 언제나 명석이 형 연을 부러워했다는 걸 알고 있었나봅니다.
연에는 작은 글씨로 영수야 , 철수야 잘 가! 다음에 또 만나자! 라고 적혀있었습니다.
우리는 그 연을 조심스럽게 받아들고 차에 올랐습니다.
“연 날릴 데가 있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다음 주부터 영어학원 가는 걸로 등록해놨다. 서울가면 잘 해야돼. 알았지?”
엄마 목소리가 열린 창 밖으로 새어나갔습니다.
“잘 가!”
명석이 형이 큰 소리로 움직이는 차를 향해 외쳤습니다.
“잘 있어. 할머니 안녕히계세요!”
우리도 입을 맞추어 외쳤습니다.
형과 나는 어느새 한 마음 한 목소리를 내고 있었습니다.
어제 저녁 할머니가 말씀하신 대로라면 지금 형과 나는 서로 마주보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똑같이 명석이 형과 할머니를 가슴 깊이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등을 맞대고 서로 더 크다고 우길 일이 앞으로도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가끔은 이렇게 서로를 마주보고 한마음이 되는 날들도 많을 것입니다.
그렇게 형과 나는 자라게 될 것입니다.
 뒤돌아보니 할머니와 명석이 형이 여전히 손을 흔들고 있습니다.
우리도 손을 내밀어 마구 흔들었습니다.
서로가 너무 작아져서 점으로 보일 때까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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