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의 핵심은 ‘주민’이다
지방자치의 핵심은 ‘주민’이다
  • 뉴스서천 기자
  • 승인 2004.06.07 00:00
  • 호수 2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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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재옥/칼럼위원
내 고향은 서천 장항이다. 20년 전에 서울로 올라와서 가끔 한번씩 다녀오는 정도의 의미밖에 없던 고향, 가난한 옛시절과 소박한 사람들의 기억밖에 없는 이 고향이 요즘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고 있다. 일주일에 한번씩 배달되는 “뉴스서천”을 통해서 이제는 새로운 고향을 만나고 있는 것이다. 

‘뉴스서천’을 통해 나는 자라면서 알지 못했던 수많은 고향의 문제를 접하게 되었는데 이는 고향에 대한 막연한 향수와 어린시절 추억 속의 고향이 아니었다. 무너져가는 농업으로 고통받고 있는 농민들, 취약한 지역재정으로 늘어나지 않는 복지, 권위주의 시대를 털어내지 못한 행정관행과 주민갈등도 알게 되었고 그 속에서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고민하고 노력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활동도 알게 되었다. 이제 서천은, 지방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내게 고향으로서의 의미만이 아니라 전국 수 많은 지역 중의 하나, 우리나라 지방자치의 한 단위로서 그 의미와 중요성으로 남다르게 다가오게 된 것이다.

그런 때문인지 지난 호에 실린 학교급식조례와 주민투표조례에 관한 기사는 유독 관심을 끌었다. 서울에서도 학교급식조례를 제정하기 위해 시민들이 나서서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5월까지 21만명의 서명을 받아서 시장에게 조례제정을 청구했다. 나는 이 서명운동을 함께 하면서 시장과 교육감, 의회가 하지 못하는 일을 시민들의 힘으로 바꿔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많이 얻었다.
지난해에만 서울에서는 22건의 식중독 사고로 2,300명의 학생들이 고통을 받았다. 전국에서도 가장 많은 학생들이 있는 서울에서 전국에서 가장 많은 식중독 사고를 일으키고 있는 서울지역의 학교급식과 무사안일한 행정당국에 대해 시민들은 더 이상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전국적인 운동이 된 학교급식조례제정이 현재 난관에 부딪혔다. 식재료에 우리농산물을 사용하자는 이 조례에 대해서 WTO에 위배된다며 거부하는 사태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전북의 교육감이 의회까지 통과한 조례를 대법원에 제소하면서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발생하고 있으며 서울시와 경기도에서도 똑같은 이유로 부정적인 의견이 피력되고 있는 것이다.

하루 700만명이 먹고 있는 학교급식에 안전하고 친환경적인 우리농산물을 사용하자는 것은 아이들의 건강만이 아니라 우리 농업기반을 살리는데 중요한 전기를 마련할 터이다. 그런데 그런 취지의 이 운동을, 말하자면 시민의 안녕과 복리를 기본의무로 하고 있는 행정당국이 나서서 봉쇄하고 있는 꼴이다.

WTO를 주도하고 있는 미국은 학교급식법을 통해 자국산 농산물을 학교급식에 사용하도록 강제하고 있으며, 일본에서도 협동조합을 통한 자국산농산물의 사용은 무제한으로 인정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우리나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은 느끼는 바가 없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 와중에 제주도에서는 최근 ‘친환경 우리농산물’ 사용을 골자로 하는 학교급식조례를 의회에서 통과시켜 곧 시행할 예정이라 한다. 주민발의로 진행된 조례운동이 결실을 맺게 된 것이다. 나는 전북과 제주의 차이를 생각하면서 역시 문제는 주민의 힘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지역 행정을 맡고 있는 지방자치단체장과 의회가 어떻게 움직이고 결정하게 하느냐는 역시 주민에게 달려있는 것이다.

중앙정부의 압력으로부터 버틸 수 있는 힘을 만들고 지역주민들의 삶을 희망으로 만드는 것은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의회가 아니라 바로 주민들 스스로의 활동에 달려있는 것이다. 

지방자치의 3대 요소는 집행부와 의회와 주민이라고 한다. 그러나 현재의 지방자치는 주민없는 지방자치, 의회의 견제력이 무너진 지방자치, 집행부의 독주와 전횡의 기형적인 지방자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주민이다.

지난호 뉴스서천에서는 학교급식조례 제정을 약속한 군의회가 지역재정을 이유로 초안도 못잡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그렇다면 역시 주민이 나서야 한다. 의회가 조속히 약속을 이행하도록 하든지 아니면 주민 스스로 조례제정 운동에 나서는 길 밖에 없다. 우는 아이 젖 준다고, 조례제정이 발등의 불이 되어야 재정마련의 방안도 찾을 것 아니겠는가?

주민투표조례도 마찬가지다. 주민들의 관심이 없으니 다른 지역보다도 더 강화된 요건을 제시하고, 주민들의 관심이 없으니 단체장의 입맛대로 이용될 수 있을 것이라는 우려가 큰 것 아니겠는가. 주민들 스스로 자신들의 요구를 모아내고 이를 제대로 실현시키기 위한 노력과 활동이 없이 제대로된 지방자치를 기대하기 어렵다.

내 고향 서천의 주민활동 강화를 위해 힘찬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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