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사랑
숨겨진 사랑
  • 뉴스서천 기자
  • 승인 2004.07.16 00:00
  • 호수 2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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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선숙 / 칼럼위원
딸아이가 남편의 품을 떠나지 않는다. 팔베개를 하고 한쪽 다리는 남편의 몸에 올려놓더니 어느새 배위로 올라가 편안한 자세로 TV를 본다. 자녀들에게 이 시대의 아빠는 어려운 존재가 아닌 편한 친구같다.

내게는 올해 일흔두살의 친정아버지가 계시다. 2남3녀의 막내여서 나름대로 사랑을 받고 자랐지만 아버지의 사랑은 별로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

그 시대의 많은 아버지들이 그렇듯이 우리 아버지도 무뚝뚝하고 엄한 분이셨다. 열심히 사시긴 했지만 가정적이지 못해서 어머니가 많이 고생하셨다. 고집도 세셔서 자신이 생각한 것은 무조건 맞다고 우기는 바람에 어머니는 육체적 정신적 고생을 많이 하셨다.

그래서인지 ‘부모님의 사랑’ 하면 어머니의 힘겨운 삶이 먼저 떠올라 애잔했지만 아버지는 그저 담담한 마음이 솔직한 심정이다.

그런 아버지가 얼마 전 위암이라는 진단을 받고 수술을 하셨다. 위암 초기는 수술만 하면 살 수 있는 요즘이기에 별다른 걱정없이 완쾌되길 기다렸는데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장이 유착되면서 한 달 사이 3번의 수술을 받으셨다.

위급상황을 맞게 된 3차의 수술에서 우리 가족들은 아버지가 무사하시길 간절히 기도했다.
예닐곱개의 가느다란 호스에 목숨을 의지한 채 만난 아버지는 그 동안 보았던 모습이 아니었다.

가장 불쌍하고 여린 모습으로 진통을 참지 못해 절규하는 아버지께 나는 아무 것도 해줄 것이 없었다. 사랑의 교감은커녕 무서워서 어려웠던 아버지를 사랑한다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내 안에 아버지가 겪는 고통과 연민으로 그렇게 많은 눈물이 숨겨져 있는지 비로소 알았다.

우리는 때때로 고통의 순간이 되어서야 진실을 확인할 때가 있다. ‘아버지와 나’는 혈육의 관계이지 서로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그의 고통을 보며 나의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을 공감함에 아버지를 사랑하고 있는 내 자신을 본다.

효도는 마음을 편하게 해드리는 것이 제일인데 아직까지도 염려를 끼쳐드리며 사는 것이 죄송하고, 고집스럽다며 아버지의 말을 무시한 것도, 그는 우리를 위해 헌신적으로 살지 않으셨다는 그 동안의 원망... 모두 죄송할 뿐이다.

항상 옆에 계셔서 아버지의 자리가 얼마나 소중한지 느끼지 못했다. 그 분이 지금 우리 곁에 계시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우리에게 기쁨이 되고 힘이 됨을 노래하고 싶다.

일곱 살 때쯤인가, 제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버지가 자전거를 태워주셨다. 어려워서 아버지의 허리를 껴안지는 못했지만 내게는 잊지 못할 한 폭의 그림이다.

꼭꼭 숨겨져서 알지 못했던 아버지에 대한 사랑! 이제 살아계신 날 동안 당신을 사랑한다고 감사하다고 많이많이 고백해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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