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라 남자네”
“어라 남자네”
  • 공금란 기자
  • 승인 2004.09.17 00:00
  • 호수 2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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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위 끝에 사랑이 묻어나는-허일무 씨
의자만 있으면 어디나 미용실
   
요즘 기자가 자주 마주치는 사람 허일무 씨가 있다. 모 병원 구내식당 또는 시골마을 회관마당에서 이다. 일무 씨를 보면 각박하다는 세상을 잠시 떠나 있는 듯하다.

“어라 남자네” 판교마을 회관마당 일무 씨의 이동 미용실을 찾은 할머니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언제였던가, 모내기가 막 끝나갈 무렵이었던 듯싶다.

마서면 신포마을 회관을 찾은 일무 씨를 보게 됐다. 의자 하나, 가위, 빗, 손거울, 농가에서 길게 늘여온 전선줄에 달려있는 드라이기가 전부인 이동 미용실에서.

농사일과 육아, 게다가 만삭의 몸을 하고 있는 젊은 농촌아낙 “그렇잖아도 미용실에 나갈 엄두도 못내고 머리 때문에 심난했는데”하며 얼마나 좋아하던지 보는 사람도 흐뭇했다.

또 우연히 모병원 구내 식당에서 무일 씨를 만났다.

어찌 여기 있느냐는 물음에 주저하며 “중환자실에 볼일이 있어서” 말뜻을 이해 못한 미련한 이는 “누가 아픈가요?”라고 물었다. 순간 그의 손에 들려진 이동 미용실 장비가 담긴 가방이 눈에 들어왔다. 당연 움직이지 못하는 중환자들의 머리를 잘라주기 위해 찾았다가 구내식당을 찾은 것을.

서른여덟 일무 씨, 화양면 봉명리에서 나고 자랐다. 근처의 학교를 다니다가 꿈을 안고 도회로 떠났다. 그가 손에 가위를 들기 시작한 것은 스무살 때부터라 한다. 같은 일을 하는 아내와 함께 도회살이 청산하고 고향에 온 것은 불과 3년 남짓이다.

서천초등학교 앞에 아담한 미용실을 장만하면서 아내는 가게를 지키고 남편은 틈만 나면 미용장비를 들고 봉사를 다닌다.

“뭐가 그리 바쁜지 늘 돌아다녀요” 가게를 찾은 손님의 머리를 만지는 일무 씨의 아내는 한시도 가게를 지키지 않는 남편이지만 밉지 않은 모양이다. 미용실 주인 치고는 보기 드물게 말주변이 없어 보이는 여자다.

동분서주 하는 일무 씨가 다니는 곳은 한 두 곳이 아니다. 군내 병원 중환자실, 경로당, 양로원, 불우이웃들이 함께 사는 곳, 농어촌마을 안가는 곳이 없다. 게다가 미처 생각 못했던 곳에 눈길을 돌리고 있는 중이다. 바로 시각장애인들인데 그들이 원하기만 하면 짬짬이 가정방문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할 수만 있으면 하는 게지요” 육신에 장애가 없어 하고 싶은 일을 맘껏 하는 것 자체가 감사한 일이라는 투다. 세상엔 가진 것 많아도, 먹고 싶은 것, 쓰고 싶은 것 다하면서도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이런 이들에게 권해보고 싶다.

일무 씨의 일하는 모습, 비록 나이들어 쭈글쭈글한 촌할머니들의 머리를 만지더라도 웃음을 담고 진지하게 가위질 하고 빗질하는 일무 씨의 모습을 상상해 보라고 말이다. 머리칼이 잘라나가며 사각사각 나는 소리가 얼마나 경쾌하던지 보는 이의 마음도 기쁘게 하는지 모른다.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감사하며 가지고 있는 재능을 함께 나누는 삶보다 값진 것이 또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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