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래잡기 (8회)
술래잡기 (8회)
  • 뉴스서천 기자
  • 승인 2004.11.26 00:00
  • 호수 2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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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 정 아
열 마리도 넘게 개를 키운다는 이장 아저씨네 집 앞을 살금살금 지나는데 아니나다를까 일제히 날 향해 짖기 시작했습니다. 닫힌 문을 박차고 개들이 뛰어나올까봐 그때부터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정도 골목을 벗어나니 집집마다 감나무에 감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게 보였습니다. 딸 사람이 없어서라고 어제 저녁 할머니가 말씀해 주신 게 기억났습니다.
“할머니!”
여기 어디쯤인데 하며 둘러봐도 할머니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할 수없이 큰 소리로 불러보았습니다 .
“할머니!”
“잉?”

그제서야 초록색 배추 사이에서 할머니가 힘겹게 일어서시는 게 보였습니다. 할머니는 초록색 윗옷을 입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쉽게 찾지 못했던 겁니다.
“얼라? 학교 갔다 왔냐? 갔다 왔으면 집에서 고구마 먹고 쉬지 왜 왔어?”
할머니 얼굴에 반가운 기색이 엿보입니다.
“그냥요, 심심해서. 뭐 할 일 없어요?”
“없다. 없어. 어서 가자. 할미가 저녁 해줄게.”
“벌써요? 이제 4시 지났는데?”
“잉, 인제 해가 빨리 떨어지잖여. 얼른 먹고 자야지.”

할머니는 하시던 일을 마무리하고 일어섰습니다.
주섬주섬 할머니가 쓰시던 수건이며 물병을 들어올리는데 밭 끄트머리에 서 있는 감나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할머니, 저 감 우리 거예요?”
“잉. 저거 빨리 따야하는디, 이렇게 허리가 아퍼서 어쩌냐?”
“제가 해볼까요?”
“니가? 못써. 위험혀서 못써. 감나무 가지가 약허잖어.”
“제 몸이 가벼우니까 한 번 해볼래요. 아, 저기 저 막대기로 해볼게요.”
나는 땅에 뒹굴고 있는 대나무 막대를 주워 올렸습니다.

해마다 가을이면 할머니가 보내주신 감을 먹곤 했는데 그 감이 어디서 열리고 있는지는 몰랐었습니다. 할머니는 허리가 아프시기도 하셨지만 이젠 더 이상 감을 보낼 마음도 장소도 없어졌기 때문에 감을 따지 않고 계신겁니다 .

난 감나무로 기어 올라갔습니다. 할머니에게 큰소리를 쳤지만 다리가 후들거렸습니다. 첫 번째 가지가 갈리는 곳에 이르자 아래에서 할머니가 막대를 올려주셨습니다.
“거기서만 따야헌다. 더 높은 디는 위험허니께.
그리고 작은 가지는 가지 채 떨어뜨려라. 그래야 안 깨지니께.”
“예.”

툭 툭 감들이 땅으로 떨어졌습니다. 어떤 거는 떨어지자마자 땅을 주황색으로 물들이며 터져버렸고 어떤 거는 할머니의 자루에 예쁘게 담겼습니다.
힘들었지만 아주 재미있었습니다. 나무 위쪽으로 조금 더 올라가고 싶었지만 그만하고 내려오라는 할머니의 성화에 막대를 먼저 아래로 던졌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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