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래잡기 (10회)
술래잡기 (10회)
  • 뉴스서천 기자
  • 승인 2004.12.17 00:00
  • 호수 2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글 / 이 정 아

“엄마, 잠깐만. 아직 안 끊은 거지? 저어, 엄마, 꼭 데리러 올 거지? 응?”
전화번호를 불러 준 엄마가 전화를 금방 끊어버릴까 봐 겁이 났습니다.
“그럼. 엄마가 방 구할 돈만 모아지면 상준이부터 데리고 올 거야. 걱정하지 말고, 엉뚱한 생각도 하지 말고 엄마가 갈 때까지 공부 열심히 하고 있어. 알았지?”
“응. 그런데 엄마, 아빠는? 아빠 소식은 안 물어?”

“아, 아빠? 그래, 아빠는 좀 어떠시니?”
“아빠 트럭 사서 장사 다니셔. 엄마 많이 찾아다녔어. 지금도 찾고 있을지 몰라. 아빤 엄마가 우리가 찾지 못할 곳에 숨어버렸다고 했어. 내가 아빠에게 이야기할까? 엄마 어디 있나.”
“아니, 상준아. 그건 아니야. 엄마가 음, 엄마가 먼저 아빠에게 전화할게. 그러니까 아직은 말하지 마. 알겠지? 너만 알고 있어, 엄마 전화번호는 할머니한테도 말씀드리지 말고.”
“알았어…”

엄마와의 통화는 할머니가 몸을 뒤척이시는 바람에 엉겁결에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난 무슨 큰 잘못이라도 저지른 것처럼 얼굴이 화끈거리고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희망이 생기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엄만 아빠 말대로 숨어버리셨지만 오늘 나에게 숨어 있는 곳이 어딘지 말씀해주셨습니다.
비록 만날 순 없지만, 분명 엄마는 내가 손을 뻗으면 닿을 곳에 계신 겁니다.
염소에게 돌을 던지던, 엄마 아빠 모두가 떠나가 버렸다던 영균이 하곤 정말 다른 겁니다.
그동안 교실에서 영균이를 볼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곤 했습니다.

나도 영균이처럼 되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어 그 녀석을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젠 아닙니다. 우리 엄마 아빠는 돌아오실 겁니다. 날 잊으신 게 아니니까요.
난 엄마 전화번호를 적은 종이를 소중하게 접어 일기장 뒷장에 끼워두었습니다. 그리고 혹시라도 잃어버릴지 몰라 노트 뒷장에 한 번 더 적어두었습니다.

“아직 안 자고 뭘 그렇게 허냐?”
방금 전까지 코를 골고 계시던 할머니가 부스스 일어나 물으십니다. 깜짝 놀라 바라보니 날 보고 계시긴 하지만 눈은 반 이상 감기신 상태입니다.
“잘 거예요.”
“그려. 얼른 자라. 피곤헌디. 월매나 피곤혀. 핵교 대니기가 쉬운게 아녀.”
할머니는 어느새 베개에 머리를 묻고 코를 고십니다.

다음날, 학교에 가니 선생님께서 예술제를 한다고 하셨습니다. 각자 잘하는 것을 두세 가지씩 적어내라며 종이를 돌리셨습니다.
한 가지는 글쓰기라고 적었는데 나머지 두 칸은 무얼 써야할지 빈 채로 끙끙거렸습니다. 학원을 계속 다녔다면 피아노나 태권도 같은 것을 적을 수 있었을 텐데…
피아노책도 태권도복도 이젠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니 써낼 수가 없었습니다.

“상준아? 뭐 적었어?”
짝꿍인 민영이가 내 종이를 흘끔거립니다.
“뭐, 아직.”
“그럼 너 우리랑 오인조로 댄스 할래? 요즘 유행하는 곡에 맞춰 춤을 추는 거야.”
“그런 것도 괜찮아?”
“그럼, 작년에 그거 한 애들 인기 짱이었잖아. 같이 하자. 지난번 체육 시간에 여자 애들이랑 율동할 때 보니까 너 제법이던데. 응? ” 

<계속>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