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의원직을 걸어라
차라리 의원직을 걸어라
  • 편집국 기자
  • 승인 2005.04.22 00:00
  • 호수 26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철도공사의 러시아 유전개발 참여 의혹 사건을 둘러싸고 정치권이 시끄럽다. 야당은 이 사건을 ‘전형적인 권력형 비리’로 규정하고 총공세를 펼치고 있으며, 여당은 야당의 주장을 ‘불순한 선거용 정치공세’로 평가절하하고 있다.

진단이 다르면 처방도 다른 법인가. 여야는 수사의 주체를 검찰과 특검 중 어느 쪽이 맡아야 하느냐를 두고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제2라운드의 공방전을 벌였다. 그러나 정작 국민들은 정치권의 논쟁에 그리 큰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정치권이 벌이는 ‘그들만의 리그’를 지켜보면서 필자는 조나단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를 떠올렸다. 이 풍자소설에는 계란을 깨어 먹을 때 뾰족한 부분과 둥근 부분 중에서 어느 쪽의 껍질을 깨뜨릴 것인지를 두고 사생결단의 논쟁을 벌이는 이상한 나라 이야기가 나온다.

물론 그것은 쓸데없는 문제로 왈가왈부했던 18세기 영국의 정치현실을 통렬하게 조소한 것이긴 하지만, 21세기 대한민국 국회의 일그러진 자화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지적도 나올 법하다.

정치권이 벌이는 ‘그들만의 리그’를 지켜보면서 필자는 한 코미디 프로를 통해 유행어가 된 “그 때 그 때 달라요”도 떠올랐다. 우선 열린우리당은 선거공약으로 공직부패수사처 신설과 한시적 상설 특검 설치를 내놓은 바 있다.

그러나 이번 사안과 관련해서는 특검 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다. 입장 표변이라는 점에서는 한나라당도 크게 다르지 않다. 검찰개혁과 관련한 논쟁이 있을 때마다 삼권분립 정신에 입각해 검찰의 권위를 존중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던 전력을 까맣게 잊은 듯한 행태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치권이 벌이는 ‘그들만의 리그’에서 재미와 감동을 느끼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먼저 자기 성찰의 자세가 부족하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이 문제가 공개된 것은 정치권의 감시가 아니라 언론의 보도에 의해서였으며, 여러 가지 의혹이 불거지기 시작한 시점도 지난해 11월부터였다.

물론 철도공사의 살림살이를 감시해야 하는 1차적 책임은 국회, 그 중에서도 건설교통위원회에 있다. 그리고 국회는 지난해 12월과 올해 2월 두 차례나 임시국회까지 열었다.

그러나 확인 결과 건교위는 지난 2월 철도공사로부터 아예 업무보고도 받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정치권이 명백하게 직무유기를 한 셈이거니와, 먼저 자기 반성부터 수행하거나 이 사건을 보도한 기자들에게 세비를 넘기고 공방전을 벌였더라면 그나마 국민들로부터 일단의 진정성이나마 인정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정치권의 정쟁 자체를 탓할 생각은 없다. 적당한 타협보다는 그래도 치열한 싸움이 낫기 때문이다. 다만 생산적인 싸움, 책임지는 정쟁을 수행하면 될 일이다.

결국에는 태산명동 서일필(泰山鳴動 鼠一匹)로 끝난 옷로비 특검, 동료의원을 “국회에서 암약하는 간첩”이라고 매도해 놓고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정쟁은 그만 보고 싶다. 권력형 비리가 분명하다고 주장하는 의원이나, 그것을 정면으로 부인하는 의원이나 박세일 전 의원처럼 의원직을 걸고서 ‘진실게임’을 벌여보는 것은 어떨까.

<정지환/여의도통신 대표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