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여는 강연
“나무가 없으면 선진국 아니다”
새벽을 여는 강연
“나무가 없으면 선진국 아니다”
  • 편집국 기자
  • 승인 2005.04.22 00:00
  • 호수 26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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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연환 산림청장

‘새벽을 여는 강연’은 “좋은 사람이 좋은 세상을 만듭니다”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있는 한국인간개발연구원(KHDI)의 조찬강연을 지상중계하는 코너입니다. KHDI가 지난 30년 동안 매주 목요일 오전 7시에 한 회도 거르지 않고 1397회(금주 기준)나 진행해 온 조찬강연은 국내 최다 회수를 기록하며 최고 권위의 강연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지난 4월 14일 롯데호텔 2층 에메랄드룸에서 조연환 산림청장이 ‘경제선진국의 꿈과 산림정책’을 주제로 강연한 내용을 정리한 이 기사가 우리 지역 주민들의 교양 쌓기에 작은 도움이나마 되기를 바랍니다.                                      (편집자주)

“산림청장에게 산이란 무엇입니까?”

   
조연환 산림청장. 열아홉 나이에 말단 직원으로 산림청에 들어와 38년 동안 근무하다 마침내 최고 수장의 자리에까지 오른 인물이다.

물음표가 붙어 있는 앞의 짤막한 문장은, 그런 조 청장이 산림청장 취임 직후 인터뷰를 하던 중 한 기자로부터 돌발적으로 받았던 질문이다. 당시 조 청장은 뭐라고 답변했을까.

“너무나 원초적 질문이기에 처음에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그렇다고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고 답할 수는 없었다(웃음). 잠시 생각하다가 ‘산은 어머니’라고 짧게 답했다.

실제로 한반도 면적의 64%를 차지하고 있는 산림, 뭍 생명이 터 잡고 살아가는 백두대간과 12정맥은 가난하고 어려웠던 시절 조건 없는 헌신과 희생으로 자식들을 돌봐 주셨던 어머니를 많이 닮았다. 그런데 지금 다시 똑같은 질문을 받는다면 나는 ‘산은 어머니인 동시에 밥통’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렇다면 산을 밥통에 비유한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은 밥 없이 살 수 없거니와, “동화 속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산은 우리의 생존과 번영을 가능케 한 원천이자 밑천이기에 그렇다”는 것이 조 청장의 설명이다. 선문답을 연상케 하는 이 대화에서 우리는 조 청장의 산림관을 엿볼 수 있다.

“금수강산(錦繡江山)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한반도는 울창한 숲으로 덮여 있었다. 그러나 일제의 식민 통치, 해방과 전쟁을 잇따라 겪으면서 우리의 산림은 황폐화와 초토화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한반도 산림사는 착취와 수탈의 역사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1973년부터 시작된 치산녹화 10개년 계획 이후 한 세대만에 울창한 숲을 되찾은 것은 획기적인 일이다. 그러나 산림청장인 나는 지금 반드시 기쁘고 자랑스럽지만은 않다. 도리어 숲을 바라볼 때마다 슬퍼서 눈물이 나고, 괴로워서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다.”

사람이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전국의 산림이 울창해졌건만 정작 조연환 산림청장은 왜 이런 비관적 표현을 쓴 것일까.

“내 말의 행간에 담긴 역설적 의미를 잘 읽어주기 바란다. 유엔 식량농업기구가 ‘녹화성공국’으로 평가했을 만큼 우리가 울창한 숲을 되찾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는 ‘제2단계의 치산녹화’가 필요하다. 나무를 심어만 놓고 잘 자라기를 바라는 시대는 지났다.

사람도 잘 키워야 인재가 되듯이, 치산정책도 이제 ‘양’에서 ‘질’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 한국의 숲은 벌써 청소년이 됐는데 여전히 돌잔치 때 선물한 옷을 입으라고 하면 안 된다. 한국의 숲이 지금 이렇게 성장통을 앓고 있는데, 어찌 슬프고 괴롭지 않겠는가.”

위기는 기회라는 말이 있거니와, 1997년 불어닥친 IMF 위기는 한국의 숲이 새롭게 태어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고 한다.

“전 국가적으로는 ‘불행’이었지만 우리에겐 ‘불행 중 다행’이었다. 외환위기로 실업자가 양산되자 일자리 창출이 최고의 미덕으로 통하는 시대가 되었다. 1998년 3월 생명의숲을 가꾸기 위한 공공근로사업 제안서가 채택되면서 이 사업에 5년 동안 5천7백억원이 투입되었다.

과거 경제기획원이나 예산처에 비슷한 명목으로 5백억원의 예산을 요청했지만 냉정하게 거절당하던 때를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변화였다. 당시 나는 생명의숲 가꾸기 담당 과장이었는데, 서울역에 나가서 노숙자들을 설득하다가 멱살을 잡히거나 심할 경우 따귀를 얻어맞기도 했다.”

어린 묘목 한 그루가 자라기 위해서는 한 평의 땅이면 족하다. 그러나 10년 동안 자란 나무 한 그루에는 10평의 땅이 필요하다. 그래야 나무가 제대로 자랄 수 있고, 주변에서 풀과 꽃도 더불어 살아갈 수 있다고 한다.

그나마 생명의숲 가꾸기 운동 5년 동안 급하게 손봐야 하는 숲 2백만ha 중에서 4분의 1에 해당하는 50만ha를 그렇게 새롭게 가꾸었다. 그러나 이 사업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매년마다 최소한 1천2백억원이 투입돼야 한다고 한다.

“물론 일부에서는 나무가 무슨 돈이 되느냐고 비판하기도 하는데,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솔직히 복장이 터진다. 산림의 공익적 가치는 2003년 기준으로 무려 58조원이 넘는다. 더욱이 올 초에는 온실가스 배출을 규제하는 교통의정서까지 채택되었다.

우리는 2만달러 부자 나라인 중동의 산유국을 선진국이라 부르지 않는다. 공교롭게도 그 나라에는 나무와 숲이 없다. 나무가 없으면 선진국이 아니라는 말이 왜 나왔는지를 가슴 깊이 새겨야 한다. 2만달러 선진국에 걸맞는 숲을 가꾸기 위한 노력을 중단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편 이날 조찬강연에는 ‘소나무 박사’로 유명한 전영우 국민대 교수도 공동강사로 참여해, 소나무의 문화적 가치와 현재적 의미에 대해 설명했다.

<정지환 여의도통신대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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