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루 마을의 이발사』
『장마루 마을의 이발사』
  • 이후근 기자
  • 승인 2005.04.29 00:00
  • 호수 26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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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 주인공도 떠났지만……
장마루에는 신송이용원이 있다

장마루촌의 청년 동순은 같은 마을의 순영이라는 처녀와 사랑하는 사이이다. 그러나 6·25가 터지고 인민군에게 잡혔던 동순은 구사일생으로 살아난다. 살아난 동순은 국군에 입대하지만 전투 끝에 부상을 당하고 성불구가 되어 장마루촌으로 돌아와 이발사가 된다. 그가 살아있음을 안 순영이 찾아오지만 자신의 처지를 생각한 동순은 그녀에게 매정한 태도로 일관한다. 그러나 전후 사정을 알아낸 순영은 결국 그에게 돌아오고 마을을 재건하는 데 힘이 되어준다. 1957년 발표된 서천읍 신송리 출신 박서림(朴西林) 작가의 소설 ‘장마루 마을의 이발사’ 대강 줄거리이다. 고향 신송리로 향하는 작가의 마음이 고스란히 녹아들어간 이 작품은 한 때 장이 섰던 적이 있어 장마루라 불리는 신송리 1구가 주 무대이다. 주인공은 그 마을에 실제로 있었던 이발사가 모델이었다고 작가는 밝히고 있다. 이야기속의 순수한 사랑과 농촌계몽운동적인 요소로 인해 당시 젊은이들의 심금을 울렸던 이 작품은 60년대에는 라디오 드라마와 영화로도 만들어져 더욱 유명해졌다. 그래서인지 소설의 주 무대가 신송리 장마루라고 작가 스스로도 누누이 밝히고 있지만 지명이 비슷한 휴전선 근방의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 장파리로 잘못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런 오해에도 불구하고 소설 속 주인공이 손님들 머리깍아주고 면도도 해줬던 그 이발관은 몇년전까지만 해도 지난해 세워진 박서림 작가의 문학비가 세워져 있는 근처에 그대로 있었다고 한다. 현재 그 자리에는 개인주택이 들어서있다. 그렇게 당시의 이발사도 떠나고 그가 일했던 이발관도 없어졌지만 신송리에는 신송이용원이 있다. 지금은 이용원으로 불리지만 옛날에는 남자들 머리 손질하는 곳이 이발관, 이발소였던 적이 있었다. 이발관이 이용원으로 바뀐 것처럼 분명 소설이 만들어질 당시의 이발관은 아니지만 이 마을에 단 하나밖에 없는 신송이용원은 신송리 마을 초입에 조금은 앙증맞은 모습으로 그렇게 있었다. 굳이 소설과의 연관관계를 찾는 것이 억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마을단위 이발관을 찾아보기 힘든 요즘에도 신송리의 이발관은 분명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퇴색된 모습으로 비춰지는 것 불만 두 번인가의 헛걸음 끝에 이발을 핑계로 찾아간 신송이용원의 사장님은 박서림 작가처럼 신송리 사람이다. 라디오가 켜져 있는 이용원으로 들어서자 연탄난로가 눈에 띤다. 난방은 물론 물을 데우는 용도에다 면도할 때 비누거품을 묻힌 솔을 데우는 데 쓰는 등 그 쓰임새가 만만치 않았을. 이밖에도 손 때 묻은 이발도구, 손잡이를 검정색 테이프로 동여맨 헤어드라이기, 머리 감을 때 턱에 받치는 홈파진 나무 등이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이발을 하면서 작가이야기에서 신송리의 자랑이었던 곰솔의 고사와 보존, 자손나무 이야기까지 이런 저런 얘기들을 나눴다. 그러나 그 끝에 인터뷰 요청을 했더니 신송이용원 사장님은 손사래를 쳤다. 몇 차례인가 언론을 통해 보도됐던 이용원과 이발사의 모습이 퇴색된 모습으로만 그려져 불만이었다는 것이 거절의 이유였다. 남성들이 미장원으로 이발하러 다니기 시작하면서 시작된 세태의 변화가 더 큰 불만이지만 자신들의 일이 잊혀져가는 옛일쯤으로 취급받는 것이 싫다고 했다. 그리고 본인들도 변화된 세태에 맞춰가기 위해 세미나 같은 것도 준비하는 등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나름의 노력도 기울이고 있다고 했다. 흥밋거리라면 무엇이든지 발굴해 글을 써대야 하는 기자의 이해와는 다르게 이용업을 생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항변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박서림 작가에 대해서도 ‘장마루 마을의 이발사’에 대해서도 너무 잘 알고 있었던 그에게서 소설 속 주인공과 이발관에 대한 귀중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주인공은 오래전에 서울로 떠나고 역시 신송리 출신인 다른 사람이 이발관을 인수해 운영해 오다 이발관마저 이제는 사라지고 이제는 그 자리에 주택이 들어섰다고 했다.


또 지난해 박서림 작가의 ‘장마루 마을의 이발사’ 문학비 제막을 계기로 주민들의 관심이 높아져 당시의 이발관을 재연한다는 계획도 마을주민 사이에 얘기되고 있다고 한다.


“고향을 등지고 살아왔지만 끝내 고향으로 향하는 정을 누르지 못하고 이 ‘장마루 마을의 이발사’를 생산하고 말았다”는 작가의 고백처럼 작가에게도 인터뷰를 거절하는 신송이용원 사장님에게도 신송리는 한결같은 고향인 것이다. 또 신송이용원 사장님은 자신이 소설 속 주인공과는 별인연이 없음을 얘기하고 있지만 이미 그는 ‘장마루 마을의 이발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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