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여는 강연
“행정고시 수석이 과기부 선택했어요”
새벽을 여는 강연
“행정고시 수석이 과기부 선택했어요”
  • 편집국 기자
  • 승인 2005.05.20 00:00
  • 호수 27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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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명 --- 과학기술부총리

   
“국민소득 1만 달러 시대가 10년째 이어지고 있다. 가장 큰 원인은 경제와 기술 환경의 변화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투입주도형 경제성장이 한계에 봉착한 시점에서 새로운 혁신정책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실제로 경제성장 기여도에서도 큰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1970년대에는 노동과 자본의 비중이 55.1%를 차지한 반면 기술혁신은 12.8%에 머물렀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부터 노동과 자본은 37.2%로 하락한 반면 기술혁신 기여도는 55.4%로 급상승했다. 과학기술은 정체상태에 빠진 대한민국의 성장한계를 돌파할 새로운 성장엔진이다.”


오명 부총리 겸 과학기술부 장관은 강연회 서두에 과학기술의 중요성부터 언급했다. 그러나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가 아닌가. 오 부총리가 과학기술 입국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조직 이노베이션에 시동을 건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과기부 장관이 부총리로 승격된 직후 과학기술혁신본부를 신설했다. 19개 부·처·청을 관할해야 한다는 업무의 성격상 차관급인 본부장에 기획예산처 예산실장 출신을 배치했고, 1백명에 이르는 직원의 60%도 외부에서 충원했다. 실제로 국장 6명도 모두 재경부, 산자부, 정통부 등 외부에서 모셔왔다. 내가 직접 주관하는 과학기술장관회의도 점차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이 회의에는 환경부와 건교부는 물론이고 국방부도 참여해야 한다. 처음에는 회의(會議)가 제대로 소집될까라는 회의(懷疑)도 있었지만 첫 회의에 해당 장관이 100% 참석하는 성과를 냈다. 사실 선진국에선 연구개발(R&D) 예산의 절반을 국방부가 차지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국방과학연구소 등을 활용해 아직은 제한된 숫자이긴 하지만 박사장교 선발제도를 도입하기로 한 것은 과학기술장관회의의 큰 성과라고 할 수 있다.”


1983년부터 무려 6년 동안 체신부 차관을 지내며 ‘전화기 1천만대 돌파’의 신화를 창조했던 오명 부총리. 그는 이후 체신부 장관(1987년)과 건설교통부 장관(1994년)도 역임했다. 그런 점에서 그에게 지난해 부총리로 승격된 과기부 장관이란 자리는 테크노라트로서의 경륜을 마지막으로 불태울 좋은 기회인지도 모른다.


“나에게는 전화에 대한 '안 좋은 추억'이 있다. 1960년대에는 전화를 이용하는 것이 가장 불편했다. 일부 부자들만 전화를 소유하고 있었던 상황이었기에 일반 서민들은 동네 약국 전화를 주로 이용했다. 시외전화를 걸려면 한참 동안 교환을 기다려야 했고, 국제전화를 하려면 광화문까지 나와서 1∼2시간 기다리는 것은 기본이었다. 개인이 전화를 신청해도 바로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1960년대 말 미국 유학을 갈 기회가 있었다. 미국에 입국하던 첫날 콜렉트콜(수신자부담)을 이용하고 충격을 받았다. 더욱이 전화를 신청했는데 가난한 유학생인데도 곧바로 나오는 것이 아닌가.”


오 부총리는 1983년 최연소 체신부 차관(41세)에 임명되자마자 전화 보급 규제를 풀도록 지시했다. 냉장고, TV, 전화는 어느 정도 잘 산 뒤에 보급해야 한다는 관료들의 반론이 있었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


“전화는 다른 제품과 성격이 다르다고 설득했다. 실제로 전화는 교통 수요를 줄일 수 있고, 정보 유통의 근간이 될 수 있지 않은가. 우선 텔렉스 설치 규제를 완화하는 조치를 실시했다. 당시만 해도 텔렉스를 설치하려면 별도의 방을 만들고 담당 직원을 둬야 했다. 그런 비효율적 규제를 모두 풀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1983년 3월 21일 전화선에 팩스, 컴퓨터 등을 마음대로 이어서 쓸 수 있는 PSTN을 전면 개방했다.

시기적으로 그것은 유럽보다도 빠른 조치였는데, 이후 전화기 산업은 국내는 물론이고 세계 시장까지 휩쓸게 되었다. 그 후에는 인도와 브라질도 당시 개발에 성공하지 못했던 전화교환기(TDX) 개발에 2백40억을 투입하는 모험을 감행했다. 프로젝트 규모가 1백억원에 머물던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투자였다.”


그리고 이런 시도들이 나중에 IT산업의 기반이 됐음은 물론이다. 당시 닦아놓은 길을 활용해 이후 한국 경제를 먹여 살리게 되는 반도체, 행정전산망, CDMA 개발 등이 이어진 것이다. 오 부총리는 “이제 우리는 새로운 과학기술 영역을 개척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예컨대 최근 떠오르고 있는 자기부상열차, 스마트 원자로 등이 좋은 사례가 될 것이다. 벤처 캐피탈을 첨단산업의 주체로 나서게 하는 제도 개혁도 필요하다. 국부는 거시경제가 아니라 미시경제에서 나온다는 것이 나의 경험에서 체득한 믿음이다.

우리는 차세대 10대 성장동력을 선정해 집중 투자하는 전략을 마련했다. 그럴 때 우리의 꿈인 국민소득 2∼3만 달러의 임무도 완수할 수 있을 것이다. 행정고시 수석 합격자가 과기부를 선택한 최근의 상징적 사건(?)에서도 알 수 있듯이 대한민국의 미래는 과학기술과 함께 열릴 것이다.”


<여의도통신=정지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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