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을 여는 강연
이스라엘에 코카콜라가 없는 까닭
새벽을 여는 강연
이스라엘에 코카콜라가 없는 까닭
  • 편집국 기자
  • 승인 2005.06.10 00:00
  • 호수 27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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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 마노르 주한 이스라엘 대사

“굿모닝, 샬롬!”


   
우지 마노르 주한 이스라엘 대사는 강연회의 서막을 짤막한 인사말로 열었다. “평안하시기를!” 이스라엘 사람들이 만나고 헤어질 때마다 하는 인사인 샬롬의 의미이다.

그러니까 샬롬의 뜻은 히브리어로 ‘평화’와 ‘평안’이 되는데, 예컨대 예루살렘은 ‘평화의 도시’라고 불러야 한다. 그러나 지금 중동에는 평화나 화해의 강물보다 갈등과 대립의 핏물이 흘러 넘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강소국’ 이스라엘의 압제에 맞선 ‘약소국’ 팔레스타인의 저항은, 대한민국에서 수십 년 동안 통해 왔던 ‘이스라엘=좋은 나라’라는 공식의 기초마저 뒤흔들고 있다. 그런 저간의 사정을 인식했기 때문이었을까. 마노르 대사는 청중에게 한 장의 지도를 제시한 뒤 이스라엘이 처해 있는 주변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중동의 지도인데, 여기 가운데 있는 검은 색으로 표시한 작은 나라가 이스라엘이다. 이스라엘의 면적은 2만4천㎢로 한국의 4분의 1에 불과하고, 인구는 6백70만명으로 경기도보다 적다. 반면에 그런 이스라엘을 1억5천만명의 인구를 보유하고 있는 22개의 아랍 국가가 에워싸고 있다.

유럽의 스위스도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등 강대국에 둘러싸여 있지만 우호와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중동에서 이스라엘이 처하고 있는 상황은 전혀 다른데, 반세기 동안 ‘작은 외딴섬’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마노르 대사가 보여준 지도 위에는 ‘검은 색의 작은 이스라엘’을 향해 있는 ‘붉은 색의 큰 화살표’가 여러 개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 화살표가 출발하는 끝 지점에는 레바논, 시리아, 이라크, 이집트, 리비아, 알제리, 튀니지, 사우디아라비아 등의 아랍 국가들이 자리해 있었다. 마노르 대사는 ‘적대적 아랍 국가들’에 포위돼 있는 ‘암울한 이스라엘’의 사정을 호소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이스라엘은 1948년 건국 이후 아랍 국가들에게 파괴해서 없애버려야 할 대상일 뿐이었다. 그들은 군사적, 경제적, 정치적 방법 등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 이스라엘을 압박했고, 그것은 국제사회에서 어느 정도 통할 수 있었다.


예컨대 이스라엘에는 도요타 자동차가 단 한 대도 없다는 것을 한국인들이 아는지 모르겠다. 22개 국가와 1억5천의 인구를 가진 거대한 시장을 배경으로 이슬라엘에 대한 자동차 수출 중단을 압박한 결과임은 물론이다.


세계 모든 나라에 들어가는 코카콜라를 무더운 나라 이스라엘에서 단 한 병도 볼 수 없는 진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2년 전 열린 부산아시안게임에 이스라엘만 초청 받지 못한 것도 같은 이유였다.”


그런 점에서 이집트, 요르단 등과 평화조약을 맺었다거나 이라크에서 후세인 정권이 제거됐다는 사실은 이스라엘의 입장에서는 가히 ‘가뭄 끝의 단비’ 같은 것이었다는 게 마노르 대사가 덧붙인 설명이다. 혹여 여기까지 들은 사람 중에 이스라엘에 동정과 연민을 느끼는 분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이야기가 나오면 사정은 전혀 달라진다.


이스라엘이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신분(?)이 바뀌기 때문인데, 그래서인지 마노르 대사의 목소리도 이 대목에서 유난히 높아졌다.


“여기 한 장의 종이가 있다. 그런데 두 사람이 서로 이것을 자기 것이라 주장한다.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방법은 두 가지밖에 없다. 하나는 무력으로 싸워서 이기는 사람이 소유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당사자나 주변인은 평화적 해결을 원한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공평하게 절반으로 나누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그는 이 대목에서 종이를 반으로 갈랐다). 실제로 그런 국제적 시도가 있었는데, 1947년 유엔 중재로 영토를 분할하는 계획이 채택됐다. ‘하나님이 유대인에게 약속한 땅’이기에 이 중재에 절대 응해선 안 된다는 의견도 있었고, ‘이스라엘에 분할된 영토의 50%가 황폐한 사막지대’이므로 편파적 중재라는 비난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이 중재안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마노르 대사는 이 중재안을 ‘한 건물의 1층과 2층을 나눠 쓰며 살기’에 비유했다. 그는 “수천 년 동안 나라를 잃고 전 세계를 방황했던 이스라엘과 역시 정착할 곳을 졸지에 잃어버린 팔레스타인이 공생할 수 있는 방법은 그것 밖에 없다고 믿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자녀들’인 그들의 공생 시도는 실패했는데, 물론 마노르 대사는 그 책임이 ‘중재안을 거부하고 무력테러를 강행한’ 팔레스타인 쪽에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그 말을 듣는 순간 이스라엘 군인들의 무자비한 총격에 희생당하던 팔레스타인의 어느 아버지와 어린 아들의 모습이 자꾸만 기자의 뇌리에 떠오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마노르 대사는 강연을 마치고 떠나면서 이렇게 외쳤다.

“샬롬!”


<여의도통신 = 정지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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