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규제 풀되 환경규제 강화할 것”
“행정규제 풀되 환경규제 강화할 것”
  • 편집국 기자
  • 승인 2005.08.05 00:00
  • 호수 28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새벽을 여는 강연
박종규 규제개혁위원장

   
“대한민국의 모든 법률은 처음부터 다시 정비돼야 한다.”

이해찬 국무총리와 함께 규제개혁위원회 공동위원장(민간 부문)을 맡고 있는 박종규 KSS 고문이 조찬강연 말미에 내린 결론이다.

박 위원장은 해운회사인 KSS의 사장과 회장을 지낸 ‘기업인’이자 경실련 중앙위원회 의장, 바른경제동인회 이사장, 행정개혁시민연합 공동대표, 노사관계개혁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한 ‘시민운동가’이기도 하다.


“규제개혁위원회 일을 보면서 절실하게 생각했던 것이 있다. 무엇보다 먼저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법률 용어부터 쉽게 바꿔야 한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여러분은 ‘진정설비(鎭靜設備)’와 ‘가각전제(街角剪除)’라는 말을 들어봤는가? 이 말은 각각 도로안전시설 설치지침과 지하도로시설 기준규칙에 등장한다. ‘진정설비’는 학교 앞에서 자동차 속도를 늦추기 위해 설치한 안전턱을, ‘가각전제’는 지하도로에 설치한 건물이나 기둥의 코너를 깎아서 시야를 확보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방송법 시행령을 검토할 때는 용어와 문구가 너무나 난해해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며 사흘 동안 공부한 뒤에야 간신히 그 뜻을 알 수 있었다.”


박 위원장은 행정 소비자인 시민이나 기업보다 행정 공급자 입장에서 만들어진 대륙법 체계를 영미법 체계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내놓았다.


19세기에 비스마르크가 이끌던 제정(帝政) 독일의 법률을 모방한 것이 일본의 법률인데, 한국은 다시 그것을 그대로 수용했다는 것이다.


아울러 그는 △규제개혁과 인력·예산 연계 시스템 구축 △결과감사에서 동기감사로의 방향전환 △세법상의 부과·징수 규정 개혁 등의 대안도 내놓았다.


“국정원, 감사원, 국세청 등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해온 기관일수록 규제개혁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국세청과 관련된 세금 부과와 징수 등의 규정은 반드시 규제개혁위원회의 심의를 받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인데, 그 이유는 분명히 존재한다.


예컨대 국세청은 세금을 제대로 납부하지 않는 사람에게 10.95%의 가산세를 부과할 수 있다.

물론 부과 대상에 오른 사람은 군말 없이 즉각 이 결정에 따라야 한다. 지키지 않으면 국세기본법 위반자로 잡혀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금을 더 많이 낸 사람에게 환급을 해줄 때는 그 세율이 3.65%에 불과할 뿐만 아니라 3년이라는 환급 유예 기간까지 두고 있다.”


박종규 위원장이 ‘예리하면서도 객관적인 시각’이 요구되는 규제개혁위원회에서 일하게 된 데에는 사연이 있다. 우선 그는 한국의 기업 풍토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유쾌한 이단아’의 길을 걸어온 사람이다.


1970년 해운사업을 시작하면서 ‘리베이트 받지도 말고 주지도 말기’ 운동을 먼저 실천해 이를 업계의 전통으로 만들었으며, 회사를 자식에게 넘겨주지 않고 전문경영인에게 맡기는 결단을 내린 것이다.

 

“전문경영인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내 사무실도 회사 밖으로 옮겼다. 그러나 여전히 대주주였기 때문에 결산회의 때만은 참석했다.


바로 그때 나는 한국 기업의 관행이었던 분식회계를 거부하자고 제안했다. 대다수 기업은 울며 겨자 먹기로 결산할 때 분식회계를 통해 흑자 신고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당장 은행에서 대출금을 회수해 가기 때문이다. 엄청난 내부의 반발이 있었지만 경영진은 솔직하게 적자 발표를 하기로 결정했고, 몇 년 후 IMF 위기 때 도리어 흑자로 전환하는 계기가 됐다. 덕분에 은행 차입을 하지 않아도 자금 유동성이 좋아지는 결과도 가져왔다.
분식회계를 거부하고 결산서를 정확하게 기입하자고 주장한 것은 내가 주주의 입장에 서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박 위원장은 자신이 도덕군자의 화신이어서 그런 주장을 한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대주주의 입장에서 볼 때는, 회계가 정확하다면 한 장의 결산서만 보고도 모든 경영 상태를 알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거짓으로 작성된 것이라면 속을 수밖에 없거나 믿을 수 없게 된다. 따라서 분식회계를 하지 않는 것이 시장원리에도 맞고, 주주의 이익도 보장해준다는 것이다.


“기업과 개인이 최대한 자유롭게 경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 규제개혁위원회의 존재 이유이자 목표이다.


다만 투명성을 위한 최소한의 규제는 필요하다. 반면에 건강이나 환경과 관련된 규제는 더욱 철저히 강화해야 할 것이다.”

 

<여의도통신대표=정지환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