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격 있는 동북아 금융허브 만들 것”
“품격 있는 동북아 금융허브 만들 것”
  • 편집국 기자
  • 승인 2005.08.19 00:00
  • 호수 28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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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을 여는 강연
이영탁 - 한국증권선물거래소 이사장

   
주가지수가 10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하는 등 네 자릿수를 회복한 가운데 지난 1월 27일 출범한 한국증권선물거래소(KRX)가 주목받고 있다.

한편 KRX가 출범하기 앞서 지난해 1월 한국증권선물거래소법이 정부에 의해 공포됐고, 그해 7월 증권거래소, 선물거래소, 코스닥시장, 코스닥위원회 등 4개 기관이 합병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눈부신 양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질적 측면에서 비효율이 존재해온 금융과 증권 시장 체제를 개편하고 국제경쟁에 대비한다는 차원에서 이뤄진 조치였음은 물론이다.


새롭게 출범한 KRX의 초대 수장을 맡은 이영탁 이사장은 금융 패러다임의 급박한 변화에 대해 역설하는 것으로 강연의 서막을 열었다.


“농업혁명과 산업혁명에 이은 인류사 세 번째의 대변혁으로 불리는 디지털경제(Digital Economy)가 출현하면서 금융과 증권 시장도 급격하게 변해 왔다. 우선 인터넷 뱅킹과 홈 트레이딩 시스템(HTS) 등 온라인 거래가 증가하면서 업무 자동화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이에 따라 전자화폐, 전자결제, 인터넷공모 등 새로운 방식의 서비스가 쏟아져 나왔다.


점포와 종업원 등 유형자산 중심에서 IT기술 기반의 네트워크, 상품화 능력, 서비스 등 무형자산 중심으로 영업기반이 이동한 것도 간과할 수 없는 현상이다. 방카슈랑스로 상징되듯이 은행, 증권, 보험 등의 경계가 무너진 것도 주목해야 할 현상이다.”


프랑스어로 은행(Banque)과 보험(assurance)의 합성어인 방카슈랑스(Bancassurance)는 은행이나 보험사가 다른 금융 부문의 판매 채널을 이용하여 자사 상품을 판매하는 마케팅 전략을 의미한다. 업무 간 영역의 붕괴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로이터통신과 블룸버그 등 정보통신회사나 야후 등 인터넷 포털이 거래소의 잠재적 경쟁자가 될 것이라는 예측까지 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한국의 증권과 선물 시장은 이러한 패러다임의 변화를 냉정하게 인식하면서도 당면 과제를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이중적 사명을 부여받고 있다. 우선 한국의 증권 시장은 세계거래소연맹(WFE) 47개 회원국(56개 거래소) 중 대략 15위권의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선물과 옵션 시장은 각각 세계 4위와 1위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양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증권과 선물 시장은 아시아에서 PER 최저 수준으로 저평가 받고 있다.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Korea Discount)’ 현상을 가장 실감나게 보여주고 있는 상징적 지수라고 할 수 있다. 이 원인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극복하는 것이 우리의 당면 과제다.”


여기서 ‘PER’는 주가를 한 주당 순이익으로 나눈 값을 말한다. 주가가 주당 순이익의 몇 배인가를 나타내는 지수인데, 수치가 낮을수록 주가가 저평가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지수를 기준으로 보면, 한국(7.7)이 일본(20.9), 미국(17.6), 영국(14.7)은 물론이고 대만(13.2), 싱가폴(11.73)에 비해서도 턱없이 낮게 평가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KRX가 동북아 금융허브 달성을 위한 3개년 발전전략을 세운 것도 이러한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서였음은 물론이다.


우리는 이를 위해 ‘글로벌 KRX-동북아 최고의 자본시장’이라는 비전을 내걸었으며, 비전 달성을 위한 3대 전략으로 △신뢰받는 시장 조성 △고객 중심 경영 정착 △품격 있는 조직 구현을 제시하는 한편 2007년까지 추진할 주요 사업 1백 개를 선정하기도 했다.

이러한 시도를 통해 KRX는 2008년까지 △세계 톱10 거래소 진입 △동북아 허브 거래소 기반 구축 △시장 친화적인 서비스 기관 정착 △변화와 혁신의 신기업문화 창달 등의 목표를 반드시 달성할 것이다.”


그런데 이영탁 이사장이 제시한 3대 전략 중 ‘품격 있는 조직 구현’은 다소 추상적이라는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자신도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일까? 그는 다음과 같은 사례를 들어 설명했다.

1990년대 초에 증권국장 발령 직전에 <시민을 위한 경제 이야기>(김영사)라는 책을 쓴 적이 있다. 당시 이 책은 5만부 이상 팔리면서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올랐는데, 언론은 주가는 떨어뜨리면서 낙양의 지가만 올려놓았다고 나를 비판했다. 그런데 젊은 시절 세계은행에 근무할 때 전문가들에게 들었던 말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이 ‘경제 예측은 믿지 마라’는 것이었다.
실제로 이런 블랙 유머도 있다. ‘1 더하기 1이 뭐냐?’고 물으면 수학자는 ‘2’라고 답한다. 그러나 경제학자는 도리어 의뢰인에게 ‘어떤 답을 원하나요?’ 혹은 ‘뭐라고 답해 드릴까요?’라고 물을 것이다. 이는 경제와 주가에 대한 주관적 예측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역설적 일화인데, ‘품격 있는 조직 구현’에는 증권에 대한 그런 허위의식을 깨뜨리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여의도통신대표기자=정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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