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덕구 열린우리당 의원
“얼마 전
김원기 국회의장의 미국 방문을 수행했을 때의 일이다. 김 의장께서 교민들에게 나를 소개하면서 ‘국가가 위기에
빠졌던 어려운 시절 나라를 구한 분’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러나 나는 ‘소’를 잃는 일과 ‘외양간’을 고치는 일에 동시에 기여(?)한 인물에
불과하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점에서 우리에겐 어떤 ‘운명적 경로’가 이미 예정돼 있었던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문득 들곤 한다.
사실 네팔과 부탄처럼 바다가 없는 나라에는 해외진출이나 고도성장에 대한 꿈도 없다고 한다.
물론 꿈이
없으면 위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꿈을, 그것도 아주 야무진 꿈을 꾸고 있다. 그래서 커다란 위험도 항상
안고 있다. 꿈과 위험을 동시에 관리해야 하는 것, 그것이 우리의 운명이 아닐까.”
중국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동북아 시대가 본격적으로 도래하면서 꿈과 비전을 동시에 관리해야 하는 우리의 이중적 과제는 더욱 실감있게
다가온다. 실제로 중국의 대 동아시아 교역량은 급격히 증가하고 있으며, 수입 부문에선 이미 일본을 추월한
상태이다. 한국의 경우 수출 증가에서 차지하는 중국의 기여율은 무려 45.2%에 이른다. 그것은 한국의 주체적 대응과 선택에 따라
‘삼각균형론’으로 갈 수도 있고, ‘샌드위치론’으로 빠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한-중-일의 수평적 분업 체계라는 기회만 잘 포착하면 사상 처음으로 동북아 3국간의 삼각 균형이 가능한 상황을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자칫하면 중국과 일본의 경쟁의 틈바구니에서 비교우위를 획득하지 못하고 탈락하거나 주저앉을 수도 있다. 따라서 올바른 대응과 선택을
위해서라도 중국의 내부 문제를 제대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사실 수천
년에 이르는 중국의 역사에서 2백년 이상 유지된 왕조는 없었는데, 역대 왕조는 외부의 침략보다는 농민봉기 등 주로
내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망하곤 했다. 모택동은 ‘창조적 파괴’를 내세워 낡은 과거를 청산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먹고 사는 문제는 해결하지
못했다. 이후 등소평이 먹고 사는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하긴 했지만 내부 문제는 여전히 상존한다.”
정 의원은
사회주의와 시장경제의 혼합형이라는 이중구조(One China Two System)를 취하고 있는 중국의 내부
문제를 ‘야구공’에 비유해 설명했다.
야구공은 두
개의 가죽을 실로 꿰맨 외형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도시와 농촌, 동부와 서부, 시장적 요소와 비시장적 요소를
인위적으로 분리하는 차단벽을 상징한다. 그런데 시장경제의 발전에 따른 부조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현재의 상황은 야구공의 실밥이 터지기 직전에
비유할 수 있다는 것이 정 의원의 분석이다.
“시장경제가
발전할수록 공산당의 통치기반인 3농(농촌 농업 농민), 국유은행, 국유기업 등의 낙후와 불만은 커져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중국의 딜레마이다.
이 내부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사명을 부여받고 출범한 것이 바로 후진타오 체제임은 물론이다.
중국 공산당은
인민은행 발권력과 토지소유권이라는 배타적 권력 수단을 통해서 여전히 도시와 농촌을 통제하고 있지만 내부 문제는 갈수록 심화, 확대되고 있다.
다만 중국만이
가지고 있는 특수성이 변수라고 할 수 있다. 내부 문제에 13억으로 ‘곱하기’를 하면 엄청 커져서 ‘위험
덩어리’가 될 수도 있지만 거꾸로 13억으로 ‘나누기’를 하면 아무리 큰 문제도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정 의원은 다시 비유를 들어 대안을 제시했다.
“개방 중국은 빠른
속도로 녹아 내리고 있는 ‘빙하’에 비유할 수 있다.
혹자는 여전히
녹지 않은 채 꽁꽁 얼어붙어 있는 빙하의 본체에 주목하기도 한다. 그러나 빙하에서 녹아 내린 물은 이미 ‘대하’를
이루면서 도도히 흘러가고 있다. 더욱이 빙하에서 흘러내린 물줄기는 한국과 같은 인접 국가의 입장에서 보면 잠깐 방심할 경우 ‘홍수’에 휩싸일
정도로 위력적인 규모이다.
거대한
물줄기를 잘 활용하면 엄청난 성장 에너지를 얻을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급물살에 휘말려 중심을 잃은 채 떠내려갈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 따라서 대중국 경제전략은 ‘경합관계’를 피하고 ‘보완관계’를 형성해 나가는 방향으로 수립돼야 한다.”
<정지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