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붕괴론은 순진한 발상”
“북한 붕괴론은 순진한 발상”
  • 편집국 기자
  • 승인 2005.09.16 00:00
  • 호수 28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새벽을 여는 강연
백낙청 6.15공동위원회 남측준비위 상임대표

   
한국을 대표하는 지성인 중의 한 명인 백낙청. 그의 이름 뒤에는 언제나 서울대 영문학과 교수, 계간 ‘창작과 비평’ 발행인,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장 등과 같은 ‘문학동네’에 잘 어울리는 직책이 따라붙었다. 그런 그가 최근 통일운동의 선봉에 섰다. 덕분에 다양한 통일운동세력이 총망라된 6.15공동위원회 남측준비위 상임대표라는 다소 낯설어 보이는 직책이 그의 이름 뒤에 새롭게 붙었다.


이제는 구호로써의 ‘통일’보다 실질적인 교류로써의 ‘통합’을 말해야 할 때라고, 나아가 통일의 개념은 물론이고 통일운동 방식도 전면적으로 바뀌어야 할 때라고 강조하는 백낙청 상임대표. 그에게 “남과 북은 경제협력을 통하여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고, 사회, 문화, 체육, 보건, 환경 등 제반 분야의 협력과 교류를 활성화하여 서로의 신뢰를 다져 나가기로 하였다”는 6.15남북공동선언 제4항은 가장 소중한 실사구시의 지침으로 읽혀진다.


이번에는 조찬강연에서 강사와 청중이 나눴던 대화로 지면을 채운다. 통합이란 결국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며 대화를 나누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일 터이기에….


-북한 당국이 변화하고 있는 것만은 사실로 보이지만 미군철수를 통한 적화통일의 야욕까지 버린 것은 아닌 것 같다.


북한의 대남노선 자체가 바뀌었다고 보는가?

“북한 내부에도 그런 노선을 고집하는 강경파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표면적 주장에 불과할 뿐 실질적으로 원하는 것은 체제 유지와 지위 보전일지도 모른다. 미군철수도 전술적 주장에 불과할 수도 있다. 실제로 김정일 정권의 목표는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있다.”


-북한은 여전히 남한에 친북정권을 수립하려고 시도하고 있지 않나?

“친북정권의 개념을 명확히 해둘 필요가 있다. 그것이 경제적으로 지원하고 교류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당장 노태우 정권부터 친북정권에 포함될 것이다. 그러나 만약 북한 노동당 정권의 지침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면,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북이 먼저 알 것이다.”


-일부 신문 지상에 보도된 바에 따르면 이번 8.15민족대축전 행사는 남한이 힘들게 굿판을 준비해 놓고도 정작 독무대를 차지한 것은 북한이었다고 한다.

“작은 일에선 많이 양보할 수도 있다고 본다. 그러나 큰 틀에서 보면 북을 개혁과 개방으로 유도하는 것이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주도권은 남이 쥐고 있다고 본다.”


-북한 군대는 남한에 미군만 없으면 자신들이 남한을 먹을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인민군도 바보는 아닐 것이다. 그들은 남이 잘 살고 있으며, 북에 원조까지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지도부가 무모한 도발을 명령하면 도리어 인민군 내부에서부터 와해 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전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말은 아니다. 도리어 걱정해야 하는 것은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도발을 해오는 경우이다.”


-남한에서 남아도는 쌀을 북한에 지원하자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정부 당국자의 전언에 의하면 창고에 쌀을 비축하는 데 드는 비용이 엄청난 규모라고 한다. 따라서 대북 쌀 지원을 통해 남북 상호 이익을 도모할 수도 있을 것이다. 북한 사람들을 만나면 제일 많이 듣는 말이 ‘쌀과 비료를 보내줘서 고맙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이라고 쓰여있는 쌀포대가 그대로 북한 사회에 유통되고 있다. 전기 지원만 해도 그렇다. 통합을 전제로 우리 사회의 인프라 구축에 투자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있으니까 하는 것이라고 본다. 일방적 퍼주기 비판은 이제 적합성을 갖기 어렵게 됐다.”


-장성 숫자 줄이기 등 남한 정부의 군축 정책이 남북 관계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이라고 보는가?

“역설적으로 미국이 군사적으로 공격적 태도를 취할 때마다 북한 내부 체제는 더욱 공고해졌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미국과 일본의 군산복합체 확대 강화의 정당성으로 작용하곤 했다.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것이 중요하다.”


-차라리 북한 체제를 빨리 붕괴시켜서 통일을 앞당길 수는 없나?

“북한 체제의 붕괴가 우리에게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인지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일본의 경우에는 대규모 ‘보트 피플’이 발생해 일본 열도로 상륙하는 것을 가장 끔찍한 시나리오로 보고 있다.


경제 대국인 서독조차 동독을 흡수한 뒤 휘청거렸는데, 과연 남한이 버틸 수 있을 것인지도 의문이다.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북 체제가 붕괴한다고 해서 무조건 남에 흡수되기도 어려운 국제정세에 있다. 현 국제조약에 따르면 중국에 흡수될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다.”


<정지환 기자>
ssal@ytongsin.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