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선생께서 박영효 등과 함께 일본 '조사시찰단 -옛 호칭은 신사유람단이었지만, 이는 당시상황이 고려된 잘못된 명칭임'으로 가셨는데 결론은 일본은 힘과 물질 논리의 토대 위레 발전을 꾀하니 이를 배웠다간 조선의 정신이 무너질 것을 우려하셨고, 이완용 등과 미국 공사관으로 가셔서는 시민의식을 토대로한 발전을 배우셨답니다. 속속들이 파고들면 다 장단점은 있겠지만, 물진만능주의를 경계하신 건 사실인 듯합니다. 왜 김창룡 명창 같은 위대한 분이 장항에서 나셨는데 그 얼을 이어가자는 논의나, 1세기 동아시아의 패주였던 백제의 명성을 찾기위한 노력은 왜 건너 뛰고 제련소굴뚝에서 뿜어져나온 다이옥신 따위와 함께 먹었던 기름진 음식, 일제의 수탈도구였던 장항선에 더 연연하는지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자꾸 채만식의 <<태평천하>가 떠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