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김남희, 그림/정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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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이 올라와 잘못해서 부정 타면 연서가 죽을 수도 있다는 수희의 공갈성 협박 때문이었다. 이현의 발밑으로 담배꽁초가 쌓여갔고, 산 아래 매점에서 사온 커피 캔이 몇 개 짜부라졌다. 해가 질 때가 되어서야, 수희는 연서를 부축한 채 오솔길에 나타났다. 그녀는 이현을 보자마자 빽 소리쳤다.
“멀거니 서서 뭐해? 이 늙은이가 고생하는 게 그렇게 보고 싶어?”
이현은 허둥지둥 뛰어가 수희에게서 연서를 받았다. 연서는 힘없이 고꾸라지려다가 이현에 의해 간신히 일어섰다. 얼굴의 핏기가 싹 가셔 있었다. 연서는 수희에게 가느다란 목소리로 인사했다.
수희는 이현을 이별하고 못마땅하다는 얼굴로 돌아섰다. 연서는 이현의 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미안하지만, 택시 좀 잡아줘요. 은하 씰 만나야 돼.”
“뭐? 미쳤어? 지금 당신 몸이나 잘 간수해야 된다고!”
이현이 소리쳤다. 연서는 가느다랗게 말했다.
“은하 씨한테 해가 가기 전에 그 아이를 만나야 돼요.”
이현은 고개를 저었다.
“안 돼. 당신 걱정해서 하는 말이야.”
연서는 이현에게 기대며 작게 말했다.
“부탁이에요.”
이현은 고개를 틀어 연서의 눈을 응시했다. 그는 한숨을 쉬었다.
“어쩔 수 없지. 괜히 일어서려고 하지 말고 나한테 기대.”
연서가 힘없이 웃으며 이현에게 기댔다. 이현은 연서를 부축하며 걸어갔다.
그들이 카페로 들어섰을 때는, 은하가 퇴근하기 삼십 분 전이었다. 카운터에 있던 은하는 놀란 얼굴로 연서와 이현을 쳐다보았다. 조금 정신을 차린 연서는, 똑바른 걸음걸이로 은하에게 다가가 물었다.
“언제 퇴근하세요?”
“삼십 분 후에요.”
은하가 대답했다. 연서의 눈에는 태아령이 더 뚜렷이 보였다.
‘아가.’
그녀는 부드럽게 아이를 불렀다. 낯익은 여자아이가 연서를 쳐다보았다.
‘언니다!’
아이는 반갑게 소리치며 방긋이 웃었다. 연서는 이런 아이가 제 엄마를 죽이려고 한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웠다. 어딜 보나 천진한 아이였다.
‘언니, 우리 엄마 모르지? 울 엄마야. 이쁘지?’
아이는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하지만 곧 의기소침해진 듯이 말했다.
‘그래도 좀 있으면 말라비틀어질 거야.’
연서는 침을 삼켰다. 갑자기 돌변한 아이의 태도에, 긴장했다.
‘왜 엄마를 그렇게 만들려고 하니?’
아이가 쏘아붙였다.
‘엄만 날 버렸어. 엄만 내가 필요 없다구 했어.’
그녀는 입술을 꼭 깨물더니, 입을 열고 말했다.
‘딸은 더 이상 필요 없다고 했어. 없애 달랬어. 엄만 내가 필요 없었던 거야.’
연서가 설득하려고 했다.
‘그건…….’
아이는 소리를 빽 질렀다.
‘시끄러워! 참견하지 마! 난 엄말 데려갈 거야! 그게 엄마가 제일 무서워하는 거니까!’
그녀는 씹어뱉듯 말했다.
‘나두 죽는 건 무서웠어. 근데 엄만 날 죽여 달라구 했어. 살려 달라구, 살려 달라구 빌었어도 엄만 들어주지 않았어. 엄마가 날 죽였으니까, 나두 엄말 죽일 거야.’
연서는 목이 메어 왔다. 그녀는 조심스레 말했다.
‘사실은 엄마 옆에 있고 싶은 거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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