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수타를 아느냐?”
“너희가 수타를 아느냐?”
  • 최현옥
  • 승인 2002.07.04 00:00
  • 호수 1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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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8…16,
어느새 세발낙지 보다
더 가는 면발 완성.
40년 세월 묻은 수타면엔
꼬냑보다 더 깊은 맛이 물씬.
탕! 탕! 탕!
동생춘에 들어서자 2평 남짓한 부엌에서 조용덕씨(59·판교면 현암리)가 러닝 셔츠 차림으로 땀을 뻘뻘 흘리며 면발을 치고 있었다.
조씨는 소림사 권법을 하듯 밀가루 반죽을 자유 자재로 휘두르며 이리 저리 엮어 2가닥을 4가닥으로 4가닥을 8가닥으로 만들어 어느새 세발 낙지보다 더 가는 면발을 완성했다.
“여름이라 면발이 눌어붙어 더 빠른 몸놀림이 필요하다”는 조씨는 팔팔 끓는 물에 면발을 삶아 찬물에 식혀 김이 모락나는 고소한 볶은 자장을 살짝 덮어 내놓는다.
“세상이 기계화가 되고 편리해지지만 자장의 기본인 수타만은 못 놓겠더라구요”
40년 수타면 외길 인생을 걸어오며 기본만은 지키자는 신념이 지금의 자신을 만든 원동력이라는 조씨는 수타면 빼는 기술에 자부심이 크다.
특히 한국인은 자장면 한 그릇으로 희로애락을 함께 해온만큼 자장은 자신의 인생역경과 맞물려 지금도 자장면 한 그릇이면 근심 걱정 끝이란다.
조씨가 어렸을 때 집안은 극도의 가난에 시달렸고 그의 부모는 배만은 굶주리지 말라며 13살에 중화요리집에 취직을 시켜주었다.
홀서빙부터 배달, 무연탄 구해오기 등 고된 일을 하였지만 배만 부르면 부러울 것이 없었던 시대적 상황에서 조씨는 거칠 것 없는 생을 살았다.
2년동안 고향 예산 동생춘에서 성실하게 일한 조씨는 신임을 얻어 주방에 입성하며 면발 치기, 칼 잡는 법, 불 다루는 법 등을 배웠다.
그 후 판교에서 주방장을 구한다는 정보를 입수하여 고향을 떠나 타지 생활을 시작, 지금에 이르고 있다. 자장면 한 그릇에 15원 하던 시절 판교장이라도 서는 날이면 1백여명의 손님이 가게 안을 가득 메웠다.
지금도 ‘잘 먹었습니다’ 그 한마디에 모든 피로가 풀린다는 조씨는 고향에서 기술을 배운 동생춘의 이름을 빌려 중화요리 입성 15년만에 요리집 주인이 된다.
“최고의 서비스는 옛 맛을 잃지 않는 것이라”는 조씨는 최고의 재료와 수타면 기술을 접목시켜 외지손님까지 그의 자장 맛에 매료되게 만들었다.
IMF이후 손님이 급격하게 줄어 지금은 옛날 명성을 따라가지 못하지만 지킬 것은 지킨다는 신념으로 동생춘을 이어오고 있다.
“얼마전 자식녀석이 수타면을 배우고 싶다는 의사를 밝혀 너무 기뻤다”는 조씨는 고향을 떠나와 이렇게 처자식을 건사하고 살아온 것이 인생성공 아니겠냐며 되묻는다.
“치면 칠수록 부드럽고 쫄깃해지는 면발을 보며 거친 삶을 통해 성숙되는 자신을 발견한다”는 조씨는 옛것을 지키는 그 누군가로 자리 매김하며 자장면 한 그릇에 인생을 담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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